한국일보

‘숲속의 궁전’짓다

2007-11-2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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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버나디노 라이틀크릭 건축가 김기대씨집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남가주에 단풍 드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나선 곳이었다.
샌버나디노 카운티 라이틀
크릭(Lytle Creek) 골짜기에
들어앉은 그림 같은 집.
LA도심지에서 한 시간 거리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건축가 김기대·공예작가 박영희 부부의
숲속 하얀집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모든 것을 갖춘 드림하우스.
꽃과 나무, 뜨락과 연못,
초원과 언덕이 황홀하게
어우러진 4에이커
대지에 집 바로 앞으로 맑은 내가
흐르고 뒤에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봄여름이면 꽃이 사방지천으로
피고, 가을엔
단풍이 진다. 겨울엔 눈오고 비오고 얼음이 얼고 우박도 내린다.

백일홍 싸리꽂…
‘1년 내내 꽂동산’
대형 벽난로 바비큐
무지개 송어 노는 연못
‘어도비스타일’ 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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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비 스타일로 지은 김기대씨의 집. 유명 건축가인 그가 자신을 위해 지은 역작으로 ‘편안한 공간’에 포커스 했다고 한다.

“추수감사절 무렵에 꼭 첫눈이 내리죠. 많이 올 때는 14인치까지 쌓인답니다. 남가주의 평균 기온보다 15도가 낮아서 사계절의 85%를 누릴 수 있는 곳이에요.”
집 주인 김기대(59)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골짜기는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곳, 양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바로 이집 마당에서 맞부딪쳐 휘몰아친다. 어느 때는 정원에 나와 앉아있으면 오른쪽 팔에 따뜻한 바람이 와서 감기고 왼쪽 팔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닿는 것을 한 몸으로 느끼는 순간도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일렬로 심어놓은 다섯그루의 단풍나무가 심은 위치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물들어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가을. 북쪽에 심은 것부터 새빨갛게 물들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노랗다가 가장 아래 심은 것은 파란 잎을 가진 채로 낙엽을 떨군다고 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곳인 줄 처음 땅을 살 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물 있는 곳에서 살면 좋겠다 싶어서 친구들에게 “물 흐르는 곳을 보면 좀 알려달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한 친구가 이곳을 추천했다. 와보니 정말 그들이 꿈꿔오던 바로 그 곳, 숲속 오두막집에 사는 미국인 부부에게 팔라고 졸라 부지를 구입한 것이 97년10월, 바로 붙어있는 옆의 두 집마저 어렵사리 매입해 드림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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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있던 오두막을 개조한 별채. 손님이 오면 머물기도 하고 박영희씨가 공예품을 만드는 스튜디오로 쓰고 있다.

김씨는 한국서 호텔만 17채를 지은 유명 건축가. 리버사이드호텔, 남서울호텔, 온양제일호텔, 통도사 관광호텔이 그의 작품으로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호텔들을 숱하게 지었으니, 자신이 노후에 살집을 얼마나 잘 지었을지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99년10월 기초공사를 시작, 경사진 땅을 편편하게 깎아내고 다듬고 정리해 2000년 8월 아름다운 집을 완공했다. 도시보다 산속에 잘 어울리는 어도비 스타일 디자인에 스터코로 마무리하고 땅속에 이것저것 묻어서 단단한 집을 만들었다. 정원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 시설을 했고 나무 곳곳에 조명을 해놓아 밤이면 더없이 낭만적인 숲으로 변한다. 보통 실내에 짓는 벽난로를 밖으로 내다가 큼직하게 지었으며 바로 그 옆에 한국서 공수해온 대형 무쇠솥을 걸었고, 전문요리사도 부러워할 야외 바비큐 시설을 갖추었다.
여기서 손님을 얼마나 많이 치렀던지 140명이 모여 잔치를 벌인 적도 있단다. 바로 지난달 초 큰아들의 결혼식을 이곳서 치렀는데 얼마나 아름답고 운치있는 결혼식이었는지 하객들 모두 밤늦게까지 황홀한 하루를 보냈다는 소문이 동네방네 자자했다.
새로 지은 본채 외에 원래 있던 오두막을 개조, 게스트하우스 겸 별채로 만들었다. 손님이 오면 머물기도 하고 아내 박영희(55)씨가 공예품을 만드는 스튜디오로 쓰고 있다. 중학생 시절부터 꽃을 공부한 박영희씨는 세계 최고의 플로랄 아트 대학인 일본 이케노보 스쿨에서 교수 라이선스를 받은 꽃전문가. 미국에서 30년간 YWCA 등지에서 꽃과 공예, 인테리어를 가르쳤고 1년전 크래프츠 앤 포크 아트 뮤지엄에서 전시회도 가진 경력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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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송어와 오리들이 서식하는 연못. 인공연못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 박씨에 따르면 원래 이곳은 ‘황량하고 슬픈 곳’이었다. 슬픈 곳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각종 꽃나무를 너서리에서 대형트럭 아홉 대로 실어날랐다. 원래 자라고 있는 큰 나무들을 해치지 않고 새로 조경한 느낌이 안 들도록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꽃배나무, 백일홍, 산단화, 바이버넘(가막살나무), 싸리꽃, 릴리 오브더 밸리, 방울꽃, 소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매그놀리아, 주니퍼… 2월부터 10월까지 정원 곳곳에는 쉬지 않고 꽃이 핀다. 사과나무도 열세그루 심었고, 자두나무, 대추나무 등등 한 그루에 2,000달러가 넘는 나무도 수두룩하니 나무값만 해도 10만달러가 넘게 들었다는 귀뜸이다.
정원 한 켠에 연못도 만들었다. 전혀 인공연못 같아 보이지 않는 연못에는 무지개 송어들과 오리가족 7마리가 산다. 맑은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무지개 송어는 한때 60~70마리가 넘었으나 홍수 때 무더기로 집을 나갔고, 오리도 이곳서 알을 낳고 부화해 엄청 많았으나 진돗개들이 계속 잡아대는 바람에 지금은 7마리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씨네 집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대문 열고 들어가자마자 맞아주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키가 무려 30피트가 넘는 나무장군들이 하늘에서 땅까지, 땅에서 지하까지 액운을 막아주며 우뚝 섰다. 그 뒤로는 40피트가 넘는 솟대가 이 동네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솟대와 목장군들은 숙명여대 미술대 학장을 지낸 김덕겸 교수의 작품. 김씨의 은사인 김교수는 평소 “미국에 한인들도 많이 사는데 한국적인게 너무 없다”고 안타까워했는데 김씨 부부가 바람에 넘어져 뿌리째 뽑힌 큰 아카시아 나무를 ‘상납’하자 2주동안 작업하여 한국의 혼을 미국땅에 심는데 성공했다.
요즘은 이 집 정원에 (김세레나의 노래처럼) 온갖 잡새가 날아드는 계절이다. 나무마다 열매 맺는 계절이라 이를 쪼아먹으려 달려드는 새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온다. 이때쯤엔 유리창을 너무 깨끗하게 닦아놓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유리창인줄 모르는 새들이 날아들다가 쾅 부딪쳐 떨어져 죽는 일이 너무 잦기 때문이다. 가미가제 식으로 와서 부딪치는데 그렇게 죽은 새들이 해마다 수십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김씨 부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한번은 비가 그치고 나니 바로 집 앞에 무지개가 떴더란다. 그걸 본 순간 박영희씨는 마구 뛰었다. 무지개를 손에 잡아보려고 달려간 것이다. 그녀가 뛰는 모습을 본 남편이 “당신 어디가?” 소리치다가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도 코앞에 뜬 현란한 무지개를 본 것이다. 그래서, 무지개를 잡았느냐고 묻자 부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잡고말고요. 잡기만 했는줄 아세요? 무지개 아치 밑으로 지나간 사람 나 말고 있으면 한번 나와보라 그러세요.”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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