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200만 미주한인들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그 날까지…

2007-09-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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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미국 정규학교에 한국어 과목을 정식 제2외국어 필수과목으로 개설하자는 한인사회의 노력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말 공동회장 3명을 선출해 뉴욕을 본부로 한 공식 후원회가 결성됐으며 한 달 여에 걸친 실행위원회 구성도 최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활동 전개를 앞두고 있다.

그간 한국어를 정식 과목으로 개설하는데 있어 필요한 주요 항목들이 여럿 거론됐지만 사실상 가장 큰 걸림돌이자 해결과제는 바로 한국어 교육에 대한 한인들의 인식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는 미국에 오래 거주한 이민자들은 물론이고 특히 갓 이민 온 신규 이민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현재 뉴욕 일원의 대다수 공립학교에는 미국에 갓 이민 온 한인학생들이 모국어로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만 제공된다. 이민자의 특성을 감안, 또 다른 제2외국어를 학습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모국어를 제2외국어 삼아 시험을 치르고 졸업조건을 충족하게 하는 형태다.
영어권 한인후손이나 타민족은 한국어를 학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실정이어서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제2외국어 교육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규 한인 이민자 학부모들의 상당수는 한국의 극성스런 영어교육에 시달리다 미국에 왔는데 여기서 굳이 ‘한국어’를 배워야 할 필요가 무엇이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영어도 어설픈데 굳이 다른 제2외국어를 배우게 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이에 대한 교육계의 대답은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영어 실력을 높이고자 한다면 한국어 실력도 함께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학생들이 영어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탄탄
한 모국어 실력이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되는 만큼 이민자 학생들도 같은 이유로 모국어 학습을 계속하도록 취해진 조치다.

우리 주변에는 자녀들이 부모와 한국어로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의 한국어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이중 상당수는 부모는 어설픈 영어로, 자녀는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며 단순한 생활 한국어 수준의 대화조차 오고가기 힘겨운 가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신의 영어실력을 과신하고, 자녀의 한국어 실력까지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기도 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민자 학부모들이 문법에 맞지 않는 영어로 자녀와 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차라리 부모가 가장 편하고 자신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녀들의 언어발달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제2외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려면 모국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평균 13년을 꼬박 원하는 외국어를 사용하며 생활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1세 한인 이민자들이 영어를 완전 정복하기란 그만큼 힘든 일이지만 한인 후손들이 한국어를 제대로 배운다면 문제될 일도 아니다. 부디 미주내 200만 한인들이 자유롭게 대화하는 그날까지 한국어 정식 과목 개설에 모든 한인들이 힘을 모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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