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2007-09-21 (금)
크게 작게
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같은 날 사람과 개에 대한 기사가 둘 씩이나 올라왔다. 개의 충정보다는 사람들이 개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애완견을 기르던 40대 남자가 애견을 구하고 전차에 치여 숨을 거두었다.
또 하나는 미국의 ‘부동산 거물’이며 모델 출신인 리어나는 1972년 부동산 부호 해리 햄슬리와 결혼했으며, 1997년 남편이 사망하자 모든 재산을 상속받아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부동산을 운영했다. 그가 애완견에게 1,200만 달러(약 115억원)나
되는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반면 손자 중 2명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느닷없는 돈벼락으로 천만장자가 된 개는 ‘트러블(Troble)’이라는 묘한 이름의 암컷 몰티즈
로 올해 8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그녀도 50대 중년인 셈이다.
뉴욕포스트는 ‘천만장자 개’가 과연 1,200만 달러를 어떻게 쓸 지에도 관심을 쏟았다. 재단 관계자는 트러블이 원하는 대로 재산은 쓰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개 경호원, 산보 시켜주는 사람이 고용되는 것은 기본이다. 트러블은 이름 만큼이나 먹는 게 까다롭다. 사료를 절대 먹지 않
는 미식가로 악명이 높다. 개 밥그릇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건네야만 먹는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난다.


그러나 아무리 개가 사람과 친밀하고 영특한 동물이라 해도 사람을 ‘개’라고 부르면 큰 욕이 된다. 개를 사물의 접두어로 쓰면 비천한 뜻으로 전락하고 만다. 살구, 나리, 꿈, 떡, 뿔, 죽음과 개살구, 개나리, 개꿈, 개떡, 개뿔, 개죽음이 같은 뜻일 수 없다. 사람을 개와 비교하는 것 자체
가 욕이 될 수 있다. ‘개 보다 낫다’ ‘개 보다 못하다’ 급기야는 ‘개 같다’라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에게 새로 부여된 임무들 가운데 ‘애완동물 주인’이라는 임무가 있다. 집 앞마당에 개나 고양이를 풀어놓고 지내던 시절은 이제 머나먼 옛날 옛적 이야기로, 요즘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건 자식 하나를 더 키우는 것처럼 돈과 시간과 정성이 든다. 배신하지도 않고, 속을 썩
이지도 않고, 또 사랑을 베푸는 만큼 따르고, 충직해서 애완견을 키운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기적인 현대인들의 사랑 방식 때문에 애완동물 애호가들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현대인들에게는 동물은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키우다 말다 할 수 없다. 애완동물의 소유를 통해 인간들은 심리적, 육체적인 건강을 증진시키며 사회적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신문에 실리는 사연의 주인공들 외에도 맹인 안내견, 인명구조견, 마약탐지견 등 개는 여러 영역에서 인간 삶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개는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을 위로해 주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이다. 우리 개들은 구멍난 방석 위에서 자고, 찌그러진 냄비에 밥을 먹어도 행복하다. 주인님의 사랑만 있다면 말이다. 그게 바로 우리 개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복음 7:6) 개에게 진주를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의 가치를 모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자기를 위해 인간이 죽고 자기를 위해 많은 유산을 주었다 한들 개 이상이 아니다. 자기를 위해 인간이 죽고,
자기를 위해 많은 유산을 주었다 한들 개 이상이 아니다.
나도 개를 기르고 있다. 개에게 최고의 자유는 아마 개처럼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가 사람처럼 대우 받는다는 것은 아직도 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소릴 듣는다.

그러나 개가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집 개는 아무래도 불쌍하다. 내가 남겨줄 유산도 없고, 대신 죽어줄 마음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를 눈치 챘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짖어댄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