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인들의 신앙심

2007-09-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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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태정(회사원)

영국의 버트란드 럿셀은 논리학자인 동시에 철학자며 또한 수학자이다. 거기에다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그를 가리켜 20세기의 대표적인 지성 중의 한 사람이라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그는 어느 날, 역시 학자였던 아들과 차 한잔씩을 사이에 두고 부자간의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었다. 아들이 먼저 “아버지께서는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어허… 방금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구나”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왜 크리스찬이 아닌가?’라는 그의 저서 때문에 혹자들은 그를 무신론자로 규정짓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쪽이나 그것의 반대쪽이나 둘 다 논리적으로 증명해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논리학자로서의 그는 스스로 무신론을 주장하지는 않았었다. 또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어떤 특정의 종교를 가지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고 그는 보았다. 그는 종교란 백화점에 진열된 옷 중에서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선택하듯이 자의적으로 택하는 것보다는 부모의 영향이나 주위의 환경의 지배 하에서 타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그의 저서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크리스찬인 사람이 만약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십중 팔구는 그는 아마 지금 열렬한 무슬림 신봉자가 되어 있을거라는 것이다.20세기를 살아간 사람 중에 인간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삶을 살고 간 테레사 수녀는 무려 반세기 동안이나 신을 느껴보지 못하고 어둡고 공허한 삶을 살면서 번민하고 고뇌했다는 고백을 자신의 일기에 남겼다. 만약 그가 벌써 6년이 지나가는 ‘9.11 테러’를 생전에 목격
했더라면 ‘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되뇌이면서 바닥에 풀썩 앉은채 망연자실 했지 않았을까. 그리고 건물이 내려앉을 때 자신을 평생 바쳐온 신앙의 지주도 함께 내려앉는 체험을 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을 해 보면 그 때의 참담한 모습을 보지 않고 생을 마감한 것이 그를 위해선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미국의 보수신앙의 대표 격인 팻 로벗슨(Pat Robertson)목사는 테러 직후에 인터뷰를 한 보도진들의 “신은 어디서 무얼 하냐?”라는 질문을 받고 “하나님은 이제 우리들의 보호막을 거두어 가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반사적인 질문을 달고 올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과연 이 목사가 한 번이라도 신의 존재에 대하여 고뇌해 본 적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마치 이단 교주의 답변과 같은 말을 했다.나는 7년 전 쯤 주식시장에서 인터넷 벤처기업들의 주식이 한 창 올라가고 있을 때 그 중의 한 회사 주식을 수주간 지켜본 후 나도 남들같이 큰 돈을 벌어 보겠다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투자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매일의 상황을 지켜본 후라서 너무나 확신한 나머지 이런 기회에 나 혼자만 돈을 벌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그들도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그 주식을 사라고 적극 권했다. 그렇게 인터넷 주식에 투자한 우리들은 곧 부자가 되리라는 하늘빛 꿈만 꾸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주식의 버블이 터지면서 하늘빛 꿈은 악몽으로 변했고 투자한 돈은 뒷모습 조차도 보여주지 않고 매정하게 사라져 버렸다.그런 후에야 나는 이 세상에서 ‘반드시 그렇다’는 것과 ‘꼭 그럴 것이라고 믿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직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들 사이를 혼돈하거나, 명확히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종교는 ‘반드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꼭 그럴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를 믿음(Belief)이나 신앙(信仰)이라고 부르는 이유다.아프가니스탄에 선교를 하러 갔다가 볼모로 잡힌 후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온 것은 우선 큰 다행이다. 그들을 석방해 준 며칠 후, 탈레반의 주모자급 인사가 ‘우리는 한국정부로부터 2,000만달러를 댓가로 받았고 그 돈으로 더 많은 무기도 사고 자살폭탄용 차량도 더 구입할 수 있게 됐다’고 로이터 통신을 통해 세계인들에게 성공적인 협상을 자랑했다.

물론 협상 내용에 대해 함구하기로 약속 했겠지만 돈을 주지 않았다는 한국정부의 말을 믿을 세계인은 없을 것 같다. 그 대신 ‘코리안들은 왜 그렇게 별난가?’라는 비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하룻 강아지가 범을 겁내지 않는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뭔가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의 석학
도, 세계의 신앙인도 긴가민가하는 사항인 종교를 들고서, 더군다나 자기들대로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 종교를 버리고 이 종교를 택하라고 나서는 사람들은 종교
의 의미를 명확히 몰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자기가 믿는 종교에 너무 취해서 세상의 분별력을 잃은건지 한참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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