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행처럼 번지는 불륜

2007-09-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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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한민족포럼재단 사무국장)

요즈음 한국 TV 프로에서는 ‘남녀상열지사’를 주제로 불륜을 그린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고, 이들 드라마가 대부분 인기순위 상위에 랭크된다고 한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불륜’하면 떠오르는 영화나 드라마가 두어 편은 있게 마련일 것이다. 필자의 경우 수년 전에 보았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영화와 유동근이 열연하면서 주부들의 뜨거운 가슴에 불을 지폈다고 평하는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한결같이 불륜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세련되게 그려내고 있어 불륜이 오히려 낭만(浪漫)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포장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애인 없는 사람, 불륜이란 추억 하나 가슴에 묻고 살지 않는 사람은 마치 ‘못난이’처럼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게다가 최근 막을 내린 ‘내 남자의 여자’에서 “우릴 제발 사랑하게 그냥 놔 두세요!”라고 절규하는 장면을 보면서 어떤 때는 정말이지 그들만의 사랑이 확실하다면 순서와 방법이 조금 잘못 되었을지라도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모호한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성(理性)이 흐려질 즈음이면 고등학교 때 읽었던 단테의 ‘신곡(神曲)’에 나오는 ‘지옥편’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먼저 지옥을 여행하게 된 단테가 지옥문의 입구에서 무서운 형상으로 이를 갈고 있는 지하의 재판관 미노스를 만나는 장면이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미노스는 지옥의 문지기로 죽은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죄질을 가려내 망자를 죄에 걸맞은 지옥의 골짜기에 떨어뜨리는 임무를 수행한다. 거기에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들이 가는 지옥이 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으로 몸부림치는 아우성만 있고 한 줄기 빛이나 실낱같은 희망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무섭고 음습한 곳이 바로 불륜행각을 저지른 자들이 가는 지옥이다.그곳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탄식(歎息)과 한숨 소리 뿐이다. 그리고 회한(悔恨)의 눈물만 있다. 게다가 끝이 없는 무저갱(無底坑) 같은 공간을 단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불륜을 저지른 죄값이 다할 때까지 두려움 속에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가혹한 형벌만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지옥의 망자를 진혼(鎭魂)하지는 못할 지언정 도리어 미망(迷妄) 속에서 함께 방황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 무서운 지옥마저 불륜을 저지른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이라면 조금도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쩌면 비록 불륜이라 할지라도 두 사람의 사랑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그런 형벌은 더이상 벌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일까.

이에 대해 성(性)심리학자들은 “지금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지옥 형벌이 ‘신곡’의 느낌처럼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순수성과 영속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순수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대한민국의 안방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있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자신들의 가슴에 스스로 스칼렛 레터 ‘A’를 새기는 것을 무슨 유행으로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무언가 사랑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득한 여물지 못한 생각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비뚤어진 사랑의 결과는 자칫 ‘신곡’의 지옥보다 더 무서운 파멸을 초래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격한다.

웬만큼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불륜이 아닌 진실한 사랑이 행복의 원천이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하여 왠지 오늘은 불륜이 주는 짜릿한 순간의 쾌감보다 순수함이 그지없는 아름다운 부부 사랑이 영그는 그런 싱그러운 가을아침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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