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류사회와 네트웍을 만드는 징검다리

2007-09-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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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나는 미국에 건너와서 이민보따리를 풀면서 세익스피어의 희곡작품 ‘햄릿’을 번역한다고 겁
없이 영어에 도전했던 고전문학에 대한 나의 허영심을 깨끗이 날려버렸다.
현주소의 영어는 너무나 다르고 영어권 안에서 언어의 두꺼운 벽을 깨고 살아가야 하는 나의 삶은 가죽채찍으로 후려치는 듯한 혹독한 현실이었다.
이번에 이루어진 뉴욕타임스와 한국일보의 지면교류 협정은 신선한 충격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한국신문 지면을 통해 읽는 미국 주류신문과 한국 신문과의 접목은 한국 이민사에 획기적인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모국어를 읽는 이민 1세들과 영어권 속에 살고있는 이민 2세들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 이민가정에 새 바람을 넣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뉴욕타임스는 산업혁명 시대로부터 디지털 시대까지 격동의 물줄기를 이어온 긴 역사와 지구촌 모든 국가의 언론매체 네트웍의 방대한 그물망을 가지고 있는 언론제국의 제왕이 아닌가?


인도의 등불인 간디가 주도한 소금행진(Salt March)은 1930년 3월 12일, 인도의 염전을 강탈하고 생활필수품인 소금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한 영국에게 저항하는 전면적인 선전포고였다. 깡마른 간디가 무명천으로 몸을 두르고 지팡이를 짚고 맨발로 맨 앞줄에 서서 소금 행진의 첫 발을 디딘다.
간디의 뒤를 따라 소금을 만드는 해변으로 걸어가는 행군이 수 천명으로 불어난다. 길고 긴 행진은 광기서린 영국의 기마경찰이 짓밟는 말발굽의 야만적인 폭력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죽으면 산 사람으로 그 뒷줄이 그 자리를 메우면서 행렬이 이어진다.

이 때 그 현장에서 산 증인으로 피로 물든 파도의 물결의 행군 장면을 숨가쁘게 생동감이 넘치는 긴급 보도를 한 것은 용기있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다.인도를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해방시킨 것은 비폭력 무저항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인도인들의 죽음의 피로 물든 소금행진을 드라마틱하게 보도함으로써 세계의 시선을 모은 것은 여론의 힘이었다.이와는 정 반대로 한국 근대사의 불행한 사건을 살펴보자.100년 전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같은 운명의 구한말, 고종황제의 특사로 임명된 이준 열사는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이상설, 이위종과 미국인 힐버트씨와 함게 1907년 6월 24일, 제 2의 세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시에 도착하였다.그러나 일본의 침략 야욕과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 침몰하는 국가의 위기를 건지려던 계획은 산산히 부서진다. 동맹국이었던 일본과 영국의 방해공작으로 회의장 문은 굳게 닫히고 그들은 참석을 거절당한다.

불어에 능통했던 특사인 이위종이 회의장 광장 밖에서 국제 기자클럽에서 각국 기자들을 모아놓고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연설로 언론인들을 감동시켰다.그러나 만국평화회의보에 실렸던 기사는 일본인들의 방해로 삭제되어 버린다.회의장 밖으로 철저하게 버려지고 언론에 외면당했던 특사들의 비극적인 종말은 눈물의 씨앗을 뿌려 식민지 시대, 동족상잔, 분단국가인 오늘로 이어진다. 세계 여론으로 확대시킬 수 없었던 힘없는 나라의 슬픔이었다.

주류신문의 권위지인 뉴욕타임스와 한국일보가 손을 잡은 것은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공동체 네트웍을 만드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더욱 높이 나를 수 있는 도약의 날개를 단 한국일보사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앞으로 한국일보사에서 극치의 저널리즘의 승화의 꽃인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언론인들의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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