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네에게 보내는 개구리의 합창

2007-09-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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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옥(MOMA 근무)

모네(Claude Monet)의 연꽃 그림 앞에 개구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이를 감상하는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 오디오 설명 장치를 모두 귀에 얹혀놓고 있다. 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세 명의 개구리가 그림 저쪽편 커다란 연꽃 잎에 올라앉아 있는 모습 또한 걸작이다. 손주 하나가 할아버지 개구리에게 졸르고 있다. “할아버지, 모네 얘기를 또 한번 들려주세요”위의 것은 MOMA 소장의 예술품을 소재로 New Yorker 잡지에 수도 없이 실려나온 유명한 풍자 만화 중에서 두 장면을 뽑아내 본 것이다.


1920년에 완성한 이 거대한 세 폭짜리 ‘Water Lilies’가 1959년 MOMA의 소장품으로 들어왔을 때 둘둘 말려있던 그림의 표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먼지 투성이에 여기저기 갈라지고, 페인트의 몇 부분도 떨어져 나갔으며 2차대전 때 퍼부은 폭탄의 파편 조각들이 캔버스를 꿰뚫고 들어간 흔적도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오랜 과정, 세밀한 작품 보존사들의 치료를 받은 이 세 폭의 연꽃들은 196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현대미술관의 큰 벽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 난 가끔씩 순간적으로 4층에 올라가 이 그림 앞에 앉아있기를 좋아한다. 그 때마다 그저, 그저 평안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원을 소재로 그린 이 연못에는 수평선도, 뚝도, 하늘도 없다. 늘 변하는 우주 속의 색채와 빛, 그리고 한 몸이 되어버린 물과 하늘의 조화 - 누가 말했듯 마치 천지창조의 첫번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모네가 제공해 주었구나 생각도 든다.어느 예술작품이든 보는 이의 의견이 똑같을 수도 있지만 각자 다르게 나오는 경우 역시 흔하다. 이건 정말 좋아서 사고 싶다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못 사는 경우는 더 더욱이 많다. 그래서 비평가의 의견을 열심히 읽어보기도 한다.

작년 11월, 모마(MOMA)의 작품 보존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마이클(Michael Duffy)과 나는 그 전 해에도 그랬듯이 알(卵) 재단의 기금마련 디너에 참석했었다. 뉴욕 일원에 있는 유능한 한국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탄생한 알 재단이 첫 발걸음을 시작할 때 마이클은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 자격으로 인연을 맺게 된 동기가 되었다.그 날 역시 알 재단은 기금 모임의 중요 행사로 유능하고 존경받는 한인 예술가들이 사심 없이 내놓은 작품들을 Silent Auction 방에 가지런히 전시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내 공간으로 들여놓고 싶은 아름다운 예술품들이었다.디너가 끝날 때쯤 난 한 작품에 점을 찍어 놓았다. 가느다란 차콜의 까만 선 몇개와 씨에서, 봉오리에서, 점차 꽃으로 피어난 조그만 연꽃이 조용하게 어울리는 아주 작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마이클이 자기도 그 그림을 사겠단다. 이미 늦었다는 내 말에 마이클이 차분히 얘기했다. “나도 이 그림이 좋아요. 우리 함께 사서 6개월은 당신 집에, 6개월은 내 집에 걸어놓고 같이 즐기면 안될까요?”
놀래서 쳐다보는 나에게 마이클이 계속했다.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서로 돌려가며 전시하듯 우리도 그렇게 하면 이 그림을 더 다양한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고 그림을 사는 부담도 적어질텐데요”얼마나 좋은 생각인가? 난 딱 6개월을 내 집에 걸어놓고 5월이 되면서 마이클에게 갖다 주었다. 지금 이 친구의 사무실에 단정히 걸려있다. 내가 보였던 이 그림 소장의 소극적인 태도와 보다 넓게 생각을 펼친 이 착하고 현명한 친구의 판단은 어느 비평가도 끼어들 틈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난 모네의 연꽃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던 개구리들의 순수한 비평을 들어보고 싶다. 개골개골 목청 높은 합창이 드높게 들려올 것만 같다만...그리고 어느 먼 날, 우리 손녀들과 함께 연잎에 앉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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