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물 한 방울의 소중함

2007-09-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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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우리 몸의 75%가 물이라고 한다. 인간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 살면서도 물속에 있다가 또 태어나서도 인간은 일생동안 물을 마시며 산다. 한 생물학자는 말하기를 인간이 이 세상에 나와서 죽을 때까지 살면서 마시는 물이 한 사람당 평균 6500 갤런이나 된다고 한다. 뼈에도 25%가 들어 있는 이 물은 우리 몸의 노폐물을 제거시키고 비타민을 체내에 순환시키며 갈증을 해소해 주기 때문에 우리 몸을 유지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물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시는 청량음료처럼 맛은 없다. 그러나 덤덤하다. 그렇지만 콜라나 주스 같은 청량음료는 아무리 맛이 있어도 물과 같이 주 음료는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가정생활도 매일 매일 똑같이 부부가 서로 같이 지내고 자녀들과 같은 생활을 하여 지루할지 모르지만 이 생활이 실은 물과 같이 소중한 것이라 생각된다. 직장생활에서 같은 생활의 반복이나 교회 또는 단체생활도 동일한 맥락에서 보면 가정생활과 다름없이 중요한 생활이다.


친구나 이성간에 잠시 잠깐 쫓고 하는 일시적 우정이나 사랑은 청량음료와 같이 달콤한 맛은 있어도 늘 보아도, 같이 있어도 부담이 없는 가족이나 친구와의 사이에서처럼 지속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물과 같은 생활은 무덤덤하고 맛이 없어 자칫 소홀히 여길 수 있지만 실은 일상생활의 모든 무덤덤하고 담백한 것들이 진짜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늘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지켜주는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그리고 언제나 가까이에서 같이 하는 친구나 이웃, 직장의 동료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나 일, 어쩌다 특별히 만나는 사람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늘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실은 우리 삶에 있어서 정말 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때문에 하찮게 생각되기 쉬운 물건이나 사람, 일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특별한 것만이 중대하고 소중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특별한 것을 찾기 위해 부질없는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 낭패를 보는 일들이 많다. 그 예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황우석 사건도 그랬고
명예와 부를 쫓기 위해 가짜학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유용하다 망신을 당한 한국의 최근 많은 유명 인사들의 사건 등이 그랬다. 다 특별한 것을 추구하다 생긴 사건들이다.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남들보다 더 잘난 것을 추구하다 인생의 낭패를 보았는가?

이들이 만일 물 한 방울의 소중함을 알듯 자기 인생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런 실수와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삶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몰랐기에 이런 망신과 실패의 잔을 맛보는 것이다. 진짜 소중하고 귀한 삶은 달고 맛난 맛이 당장 없더라도 물과 같이 무덤덤해 보이는 생활이 실은 정말 아주 중요하고 귀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소리 나지 않고 남이 보기엔 하찮아 보이는 그런 무미건조해 보이는 삶, 실은 그 속에 바로 인생의 진짜 의미와 참 맛, 삶의 귀한 철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밤새 ‘똑똑’ 떨어진 물 한 방울이 잔을 채우듯 물 한 방울은 인간의 생명을 살릴 만큼 소중한 것이다. 하루하루 우리의 생활도 이와 같이 물이 떨어지듯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크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차곡차곡 모아지는 1달러가 세상을 변화하듯 물 한 방울처럼 하찮게 보이는 하루하루 생활이 지속적으로 모아질 때 그 사람의 삶의 질은 변화되고 개선되고 발전을 거듭한다. 우리사회에 그 많은 교회 강단에서 매주 나오는 목사들의 설교가 제대로만 전달되고 하나하나 그대로만 이
행된다면 물 한 방울이 잔을 채우듯 교인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선한 곳으로 만들지 않을까.

그래서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생활이 따지고 보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9월 들어 유달리 지루하게 느껴지던 내 가족, 내 이웃, 내 직장동료, 내 교회 교인, 내 일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풍요속의 빈곤이라 할까. 빈곤 속의 풍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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