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향기있는 삶

2007-09-1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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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근(무궁화상조회 회장)

경기도 하남시의 한 중고등학교 앞에서 내외가 2,000원짜리 도시락 배달로 생계를 꾸려가는데 제 때 받지 못하는 외상값이 한 해에 5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그 학교에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 학생들이 많은 것을 알기에 속상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넉넉하고 흐뭇한 마음으로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하루는 한 젊은이가 4년 전의 외상값이라고 하면서 12만원이 든 봉투를 내놓으면서 그 때는 형편이 어려워 본의 아니었으나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 돈을 번다고 하면서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기다려 준 고마움에 감사했다.

이러한 사실을 취재한 기자에게 주인 내외는 “어린 학생이 4년 동안 도시락 외상값을 가슴에 안고 살았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서울의 삼각지 뒷골목, 할머니 혼자 탁자 4개가 전부인 국수집을 차려놓고 25년을 한결같은 가격과 후한 인심으로 장사하는 ‘옛집’이 우연한 일로 TV에 소개된 후 담당 PD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파라과이에 이민해 장사를 하며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이 사람이 15년 전 사기를 당해 전재산은 물론 아내마저 집을 나가 가정마저 파탄된 허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다가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아다니며 한 끼를 구걸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자 독이 오른 그는 모두 불질러 버리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품은채 이 ‘옛집’에 들어가 국수를 주문했다.허겁지겁 단숨에 먹어치우는 것을 본 할머니는 빈 그릇에 국수와 국물을 다시 가득 채워주었다. 사나이는 두 그릇을 먹어치운 뒤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 ‘뛰지 말고 그냥 가, 넘어지면 다쳐!’ 그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씻어버리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면서 평생 잊지 못할 ‘옛집’의 그 할머니를 소개해주어 고맙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비록 큰 부자도 아니고 유명인사도 아니지만 이 기사를 읽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비록 사업이랄 것도 없는 영세업으로 이어가는 형편이지만 이들은 단순한 음식장사가 아니라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천사요, 행주치마를 두른 스승이요, 어두움을 몰아내는 등불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나를 숙연케 하였다.
3%의 염분(鹽分)이 청정한 바다를 이룬다. 비록 혼탁하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이와 같이 향기 있는 사람들이 구석 구석에서 나름대로의 향기를 발하며 생동하기에 그 향기와 더불어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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