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영원한 비밀! 있다? 없다?

2007-08-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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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한국이 온통 학력 위조 문제로 들끓고 있다. 동국대 신정아 교수를 시작으로 불거진 학력 위조 논란은 교육계는 물론, 예술계와 연예계까지 이어져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계속해서 콸콸 터져 나오고 있다.

쉽게 달아오르는 냄비처럼 처음에는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며 난리법석이던 누리꾼들조차 이제는 지겹다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을 만큼 너무 많은 유명인과 사회 고위층의 가면이 속속 벗겨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자신의 학력이 들통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움켜쥐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실 남들은 별로 관심도 없는데 굳이 자기 스스로를 ‘박사’라고 추켜세우며 박사 대접을 받으려 애쓰는 일부 한인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중 일부는 정작 무슨 전공분야로 박사를 취득했는지, 어디 대학 출신인지 실상을 아는 주변인들이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 한인사회에서 간혹 의심되는 한인들의 학력 위조는 대학이나 대학원에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다.

1974년부터 시작된 소위 ‘뺑뺑이’ 세대 이전에 일류 고등학교 진학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던 시대를 살아온 한인들 가운데에는 출신 고교마저 속이는 경우도 흔하다. 자신이 모 명문고를 졸업한 동문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한 한인단체의 회장은 해당 고교를 실제로 졸업한 또 다른 한인단체의 대표와 맞닥뜨린 자리에서 거짓말이 들통 나자 이후로
는 한인사회 행사에서 실제 동문의 행보를 살피며 가능한 마주치지 않으려 피해 다닌다는 후문마저 들릴 정도다.

또한 최근 이곳 뉴욕의 교육계에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년간 뉴욕한인사회는 뉴욕시 교육청 이중언어교육부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온 유일한 한인 연구관이 밀려나자 그의 복직을 위해 그간 열심히 노력해왔다. 그런 와중에 기본적인 교사 자격증조차 없는 한 한인이 자신이 해당 연구관을 대신해 그 자리에 채용됐다며 각 언론사에 알린 것은 물론이고 올 여름 한국을 방문해 대학 총장들과 독대를 자청하며 자신이 마치 뉴욕시 공립학교의 한국어 교육을 책임진 것처럼 떠들고 다녀 교육계의 눈총을 받고 있다.

본보는 이미 해당부서의 담당국장과 1시간이 넘는 통화 끝에 해당 한인은 단지 기존 한인 연구관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업무 공백에 따라 프로젝트가 있을 때 잠시 불러 도우미 역할을 맡겼던 임시직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한인은 자신이 기존 한인 연구관의 자리를 대체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돌출행동까지 일삼고 있다. 한인 연구관이 되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 까다로워 공립학교 교사로 오래 근무해 온 일반 한인 경력교사들조차 감히 엄두를 내지 않는 힘든 직책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영원한 비밀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계속 가면을 쓴 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의 멋진 옷을 입고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주인공과 다를 바 없다.

잇따른 학력 위조와 학력 과대 포장 등의 폭로 속에서도 아직 자신이 벌거벗은 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임금님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한없는 측은지심이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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