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양새

2007-08-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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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유아기 아기들에게 보여주는 비디오 중에 여러가지 모양을 가르쳐주는 것이 많다. 주로 바른 네모꼴(정사각형), 긴 네모꼴(직사각형), 세모꼴(삼각형), 동그라미(원), 달걀꼴(타원형) 등이 기본이다. 두살 짜리 손자는 그 비디오를 제일 좋아하고 열심으로 본다.

어느 날 손자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갔더니 길 옆에 있는 둥그런 하수구 뚜껑을 보고 “써클”하면서 좋아한다. 기특한 생각이 들어 “그래 그래” 하면서 칭찬해 주었다. 한번은 공원 놀이터에 데리고 갔더니 세모꼴 손잡이를 보고 ‘트라이앵글” 하고 소리치고 바닥의 네모난 모양을 가리키며 “스퀘어” 하고 반복한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었다. 요즈음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빨리 익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 기본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두 살짜리 손자에게서 한 수를 배운 셈이다.


집안을 둘러보니 둥그런 것은 시계, 전구, 그릇, 접시 등이 보이고 네모진 것은 책, 사진 액자, TV화면, 문 등이 눈에 들어왔다.아이들 그림을 보면 사람은 원과 타원형을 결합하고 팔다리는 작대기 네개를 그으면 된다. 산은 세모꼴, 집은 네모꼴, 지붕은 세모꼴, 자동차는 타원형으로 그려져 있다. 아이들은 복잡한 것은 빼고 기본적인 모양만을 그린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가 무엇을 그렸는지 금새 알아보게 된다.

어른들은 인생문제들을 너무 복잡하게 보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의외로 생활문제를 단순하게 그 근본을 보고 있으리라는 느낌이 든다.사람들의 얼굴도 이 기본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음을 쉽게 보게 된다. 대체로 둥그런 얼굴이 많지만 네모진 얼굴, 세모진 얼굴, 달걀형 얼굴도 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가 누구인가를 알아볼 수 있는 자기 자신만의 모양새(꼴)를 가지고 살아간다.

얼굴이야 부모로부터 타고나온 것이라 관상가가 말하는 숙명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얼굴도 자기 마음에 들게 보다 아름답게 뜯어고치는 시대에 우리는 와 있다. 몸은 다이어트나 꾸준한 단련으로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자기 모양새에 더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옷 맵씨에 더 많은 노력을 쏟는다. 여성들이 출근하며 매일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는데 많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얼굴이나 몸매나 의상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것은 자기 만족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보다 좋게 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른다.아름다운 모양새가 망가졌을 때는 ‘꼴’이니 ‘꼬락서니’라는 말로 비하시킨다. 미장원에서 정성껏 머리를 손질하고 비싸게 주고 최근에 장만한 옷을 입고 외출했다가 도로 옆에 고인 웅덩이를 지날 때 예의 없이 지나는 자동차가 일으킨 물장구에 구정물을 흠뻑 뒤집어 쓰면 기막힌 꼴이 된다.

적당히 마시고 일어날 일이지 곤드레만드레 되어 혀가 꼬부라지고 와이셔츠는 바지 밖으로 반쯤 나오고 지퍼는 내려와 있고 머리는 흐트러져 있으며 고래고래 자기만의 불만을 터뜨리는 꼬락서니를 호감으로 봐줄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그저 직장에 다니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더 관심이 많은 젊은이를 알고 있다. 그가 어떤 결심이었는지 직장을 그만 두고 신부가 되기 위한 신학대학에 들어갔다. 몇년 후에 예비 신부가 되어있는 그 젊은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얼굴은 빛이 나고 그의 말씨는 기품이 있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인은 외부적인 차림새 보다 교양과 지성을 갖추고 있어야 되고, 신사다운 남성은 멋드러진 외모보다 따뜻한 마음과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모양새가 더 돋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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