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즐겁게 일하자

2007-08-2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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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목사/아동문학가)

미국의 노동절(Labor Day-9월 첫 월요일)은 메이데이(May Day)와는 의미가 다르다.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정치적 의미보다 노동의 신성함과 가치를 인식하자는 윤리적 의미를 가졌다.

미국 사회에는 청교도의 근로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하이웨이를 운전하며 늘 느끼는 것이 “독립한 지 200년 남짓한 이 젊은 나라가 어쩌면 이토록 빨리 건설 되었을까!”하는 감탄이다. 미국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가 굽이굽이 묻어있는 땅이다.펜실베니아 주를 개척한 영국의 퀘이커 교도 윌리엄 펜은 고생하는 동료 이민들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척자 동지 여러분, 즐겁게 땀을 흘립시다” 나도 한인 이민 동포들에게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은 개척자입니다. 긍지를 가지고 즐겁게 땀을 흘립시다”월트 디즈니의 첫 만화영화 ‘백설공주’가 1937년에 개봉되었다. 지금 보아도 재미있는 명작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일곱 명의 난쟁이가 광산에서 일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일을 즐기고 있다. 그들은 일을 하며 휘파람을 부는데 그들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너는 일을 하며 휘파람을 불어라, 그렇게 그렇게… 즐거운 가락을 흥얼거리며. 그러면 얼마 뒤에 너의 노래가 네 마음을 바로잡아 주리라. 너는 일을 하며 휘파람을 불어라”
일(work)과 밥벌이(job)는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나의 귀중한 인생이 밥벌이로 메워질 수는 없다. 육체노동에 종사하든 정신노동에 종사하든 일에 대한 가치와 보람이 밥벌이에 선행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나의 생애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소위 행복을 찾는다. 밥벌이 개념으로 일하는 한 진정한 만족을 모르며 흔히 말하는 ‘번 아웃(Burn-out, 정신적 기진상태)’에 빠진다.

옛날 영화지만 맨하탄에서 건너다 보이는 호보켄을 배경으로 한 명화 ‘부두’가 있었다. 주인공으로서 명연기를 보인 말론 브란도가 실직하고 일을 달라고 부두 노조에 애원하며 말한다. “나도 (일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도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노동을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거룩한 활동으로 부각하고 있다. ‘일=돈’의 공식은 적절한 노동관이 아니다. 일은 자기의 모습을 찾는 것이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에 온 한국의 이민자들은 대체로 한국에서보다는 더 힘들고 작업 시간이 더 길고 육체를 고달프게 움직여야 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돈벌이 개념을 앞세우지 말고 일 자체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하면서 즐거운 휘파람이 나오게 한다면 이민 정착도 빨리 되고 개인도 더 큰 행복을 느낄 것이다. 미주 이민 개척기의 선구자라는 자부심, 미국에도 조국에도 보탬이 되겠다는 정도의 넓은 의미를 나의 일과에 부여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칼럼니스트 페리(H. C. Ferree)씨가 꿈의 형식으로 쓴 우화가 있다. 그가 천국에 갔다. 흰 옷 입은 사람에게 도와드릴 것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쉬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골프를 치고 싶다고 했더니 골프장이 없다고 하였다. 마당에 채소밭을 가꾸겠다고 했더니 먹을 것이 풍부하니 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할 일도 없는데 어째서 여기가 천당이오?” 하고 따졌더니 “무슨 소리야? 당신은 지금 지옥에 와 있는거야!” 하고 소리치더란다. 일이 힘들고 때로는 쉬고 노는 것이 천당 같아도 사실 일과 땀 속에 기쁨이 있음을 말한 우화이다.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서 받는 성취도이다. 성취감은 곧 만족으로 이어진다. 다소 일이 많아도 자기 일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느끼면 성취감이 있기 때문에 의욕과 정열을 일으킬 수 있다.
뉴저지 주에서 평생을 지낸 토마스 에디슨은 “나에게 하루 여덟 시간 노동제도나 보수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나의 보상은 성취하는 기쁨이었다”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 그것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집안 살림이든, 직업생활이든 대부분의 시간이 일로 메워지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시간을 행복으로 메우는 것이다. 지겹게 일하고 억지로 일한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가는 것이 자랑 될 수는 없다. 즐겁게 땀흘릴 수 있는 지혜와 보람있게 일하는 슬기를 가진 자가 행복한 사람이다. 몇 푼 더 벌었다고 이마가 펴지고 몇 푼 덜 벌었다고 이마를 찌푸리는 사람은 평생 행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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