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총(恩寵)

2007-0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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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한 해가 다 가거나 새해가 오면 토정비결을 보거나 심하면 운명철학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까닭인 즉, 복 때문이다.
복도 하늘에서 주는 은총(恩寵)중에 하나이니 지난 해에 복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은 나의 은총이요, 당신에게 있었다면 그것은 당신의 은총이며, 은총이 나라 전체에 있었다면 그것은 전국민의 은총이다. 그러나 은총은 게으른 자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은총(恩寵)을 종종 은총(銀寵)이라고 바꾸어 생각할 때가 있다.

하늘은 우리에게 은총(銀寵)을 주었지 금총(金寵)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인간되게 하기 위한 지혜의 방법이란 걸 나는 은총(銀寵)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은총은 부지런에서 오기 때문이다.금은 완전무결해서, 비를 맞거나 티끌이 흩날리는 곳에다 오래 놓아두어도 그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땅속에서 백년 천년을 지나도 그 찬란한 본연의 색깔을 빼앗기지 않고 말 그
대로 황금빛을 자랑한다. 그러나 은은 다르다. 가치로 따지자면 금 다음으로 치지만, 은은 금보다 색깔이 은은하고 쓰임새가 많을 뿐만 아니라 독을 발견하는데 있어서도 제 몸의 밝은 색깔을 던져버리고 검게 변하여 위기를 면하게 해주는 희생도 안다.


금이 스스로 귀족임을 자랑하면서 사람들을 게으르게 하지만 은은 스스로 평민임을 자처하며 부지런을 재촉한다. 은은 부지런히 닦아야 제 색깔을 낸다. 닦지 않고 그냥 두면 색깔이 점점 어두워지기 때문에 아낙들은 부지런히 은수저를 닦는다. 닦고 난 은을 장식으로 쓰면 사람의 신분을 높이면서 단아하고, 깨끗하게 닦은 은가락지를 손가락에 낀 아낙을 보면 그 품성이 곧게 보이며, 밥상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깨끗한 은수저를 보면 밥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청아하게 보이게 한다.

사람도 닦아야 한다. 몸이야 하루 한번 닦으면 그만이겠지만 정신이란 시시때때로 돌아보며 닦아야 인간으로서의 얼굴을 유지한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사람은 무엇이 될까? 짐승이 되겠지. 옳은 일을 옳은 줄 알면서도 이기심과 욕심 앞에서 옳다 하고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무엇이 될까? 흙탕물이 되겠지. 얼굴의 표정색과 생각의 색과 마음의 색이 다른 사람은 무엇이 될까?

물고기 중에서도 독을 품은 복어가 되겠지. 사람이 참된 사람의 얼굴로서 한평생을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옳지 않은 이득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도 있고 출세길 앞에서 술수를 부릴 때도 있고, 사랑한다는 가족 앞에서 가면을 쓸 때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무섭고 겁도 나는 것이 사람인 지도 모른다.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밤중,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가다가 갑자기 사람을 만나면 짐승을 만난 것보다도 더 무섭다. 또한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반가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수심이나 걱정 대신 화창한 햇살을 옆구리에 끼고 한적한 길을 혼자 가다가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꽃나무를 만난 것보다도 더 반갑다.

정신을 깨끗하게 닦으면 그 청아한 정신은 마음으로 가서 마음을 새롭게 세우고, 새로워진 마음은 영혼을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영혼이 푸르도록 맑으면 그것이 하늘이다. 하늘은 결코 땅에다가 침을 뱉지 않는다. 하늘이 되거라. 돈이 많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없이여기지 않으며, 출세한 사람이거나 권력을 쥔 사람은 아랫사람에게 거들먹대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은 병든 자를 가엾이 여기며,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을 기꺼이 부축일 줄 안다.

깨끗하기 위해서는 깨어져야 한다. 깨어지면 깨닫는 것이 있고 깨닫는 것이 있으면 부지런히 닦는다. 닦지 않으면 퇴색하는 은과 같이 제 몸과 마음을 수시로 닦으려 한다. 바로 그것이 은총(銀寵)이고 그 은총(銀寵)이 은총(恩寵)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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