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산가족의 고통 방치 말자

2007-0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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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선(뉴욕예술가곡연구회 회장)

지난 1월 16일 납북어부 최욱일씨가 어로작업 중 납북된지 31년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31년만에 만난 남편 최욱일씨를 부둥켜 안고 울부짖는 부인 양정자씨의 비통한 모습을 보고 마음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자, 누가 있으랴?

우리는 수년 전 반세기만에 만난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터뜨린 통곡의 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시켰고 그들의 끊일 줄 모르는 애통의 눈물이 홍수를 이룬 처절한 비극을 목격했다.뉴욕타임스 전면에 크게 실린 북한의 80세 노모와 남한의 60세 아들이 얼굴을 비비며 몸을 부르르 떨고 흘리는 통한의 눈물과 가슴을 저미는 모자의 애처로운 사랑의 눈물겨운 광경을 보고 온 세상이 마음 아파하며 함께 울었다.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기약없이 다시 이별을 고하고 떠나가는 버스의 차창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처절한 모습을 보고 온 세상이 또 한번 울었다.


집을 떠난 가족이 하루 연락이 끊겨도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거늘 반세기가 넘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그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지금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도 오직 하나뿐인 민족분단국가로 남아있는 나라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6.25전쟁이 휴전된 1953년 이후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산가족들이 헤어진 내 혈육을 그리워하며 지난 반세기 동안 이산의 뼈아픈 고통 속에서 매일 매일을 참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어찌하여 우리 민족이 이처럼 엄청난 비극을 겪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 모두가 우리 국민의 의식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다.우리 모두가 크게 깨어나 민족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헤어진 혈육이 함께 모여 웃음꽃 피우고 행복하게 살아갈 그 날을 회생시켜 주어야 한다.

내가 1992년 평양에서 있었던 범민족통일 음악회에 참가하고 귀국하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우연하게 내가 탄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 같은 음악회에 참석했던 서울음대 1년 선배인 LA 거주 소프라노 L씨가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그녀의 입에서 6.25는 북침해서 일어난 전쟁이었고 김일성은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선전포고도 없이 도발된 전쟁이었으니 북침한 전쟁이었다면 북침되었어야지 낙동강까지 일사천리로 밀려내려간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남침한 전쟁이 분명하지 않느냐고 반문했
다. 그녀는 실제로 활동할 능력도 없는 사람인데도 프로그램에는 인민 성악가라 이름붙여 엄청나게 큰 사진과 함께 크게 소개된 것이다.

이곳 뉴욕에는 ‘조선은 하나다’와 같은 북한 찬양곡을 공공연히 연주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음악인 L씨가 있다. 그는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벤츠 고급승용차가 대기하고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이처럼 친북단체나 친북인사들이라는 사람들 모두가 조그만 이익을 위해 양심을 속이는 민족의 반역자들이다.

이와같은 부류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한 직접적인 원인은 민족의 반역자요 역사의 범죄자인 김대중이 온 나라를 벌겋게 물들여 놓았기 때문이며 노무현이 그 대를 이어 민족의 반역행위를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귀한 것은 행복이다. 인간의 행복은 바른 마음으로 바른 삶을 떳떳하게 살아갈 때 얻어지는 귀한 선물이다. 정의의 투쟁은 인간 행복의 쟁취다.

6.25전쟁을 일으켜 350만의 무고한 생명을 살상시켰고 온 한국땅을 잿더미로 만든 희대에 드문 잔악한 독재자 김일성과 400만의 북한 주민을 굶겨 죽여가며 살상무기와 미사일을 만들어 온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극악무도한 독재자 김정일을 언제까지 칭송하고 도와주는 반인륜적이고 반민족적인 비열한 반역행위를 계속하고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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