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을 사랑하기까지

2007-01-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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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전 MBC 아나운서)

이민이란 남은 삶을 걸고 제 2의 인생을 계획하는 ‘인생 혁명’과도 같다. 살아온 날들로 겹겹이 새겨진 정든 곳을 접고, 생소한 곳에 들어선 용기야말로 도전과 용기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모국을 떠나 생면부지의 땅 미국과 마주치는 순간, 갓 태어난 신생아와 같은 처지가 된다.이민 생활이란 제대로 정착하는 날까지 저마다 한 권의 소설책을 엮을 만큼 숱한 사연들이 쌓이고 쌓이는 게 정설로 통한다.
우선 생활 규범부터 적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언어소통을 극복하는 문제는 초기 이민자들의 가장 큰 벽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준비 없이 무작정 미국에 온 이민자들은 치러야 할 댓가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살아갈수록 미국생활이 어렵다는 푸념은 그만큼 미국을 몰랐다는 말이고, 정 떨어지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미국사회를 너무 달콤하게 생각했다는 얘기가 된다.요행히 통하지 않는 곳이면서 일확천금과도 거리가 먼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인은 좀처럼 화를 낸다거나 조급하게 서두르는 법이 없다. 우격다짐하거나 성내고 시비를 해 보았자 이득될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불편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판단되면 법에 맡기면 그만이다.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법에 대한 신뢰도는 세계의 으뜸으로 칠 만큼 상식과 도의를 법으로 지켜내는데 추상같다.미국은 이민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합중국을 일궈낸 개혁의 나라다. 놀고 먹고 즐기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화끈하게 놀 수 있는 생활규범이 이미 오래 전부터 형성된 까닭에 ‘Yes’와 ‘No’의 한계도 분명한 것이다.
불가(佛家)에선 어디에 살던 멈춘 곳을 진리의 고향으로 여기고 멈춘 곳에서 주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미국에 사는 사람이면 미국인(American)이다.

후발 이민자를 향해 “너의 나라로 돌아가라”는 선발 이민자의 짜증은 미국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만이 내뱉는 촌스런 말투다.
미국에 둥지를 튼 이상 주인정신으로 살아야지 손님정신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더우기 노예정신이나 방관정신은 언어 도단이다.타민족에 비하면 이민 100년이란 짧은 역사이긴 하지만 타민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뱃심도 키워온 세월들이었다.한인끼리 뭉치며 살기 위해 미국 이민 온 게 결코 아니라면 이젠 타민족과도 당당히 함께 가야 한다. 끼리 끼리 너무 밝히면 게토(Getto)문화에 갇혀 살기 마련이고 타민족의 미움 받기 알맞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기 쉽다. 온갖 역경 딛고 이룬 보람만이 참다운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겠는가. 책임과 권한이 분명한 미합중국은 세계에 우뚝 선 정상의 나라(Super Country)이다.
국가(Star Spangled Banner)는 언제나 장엄하게 흐른다. 성조기는 아메리칸의 자존심을 담고 펄럭인다. 이민생활의 고달픔이나 나라가 어려울 때 의연하게 흐르는 국가나 성조기는 뭉클한 감동에다 미국에 대한 진한 애정을 끌어내 준다.미국에 몸담고 살면 미국은 내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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