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원자폭탄에 관한 추억

2007-01-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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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 현(뉴욕교협 미디어분과 위원장)

70년대 말 한국의 원자폭탄 개발에 관련해서 내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북한이 원폭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지난 10월, 원폭에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으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아는 사실에 의하면 북한은 남한보다 30년 가까이 원폭 제조가 늦었다. 그러므로 북한의 원폭실험은 때늦은 소동이고 시대착오적인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다.나의 이야기가 국가 기밀에 속하는 사항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이미 30년이 지난 일이고 관련된 사람들은 거의 죽었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을 것이므로 별 문제될 일도 아니며, 또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이기도 하다. 요즈음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원폭을 보유하
게 된 것이 오히려 한반도의 안전을 가져오고, 한민족의 자존심을 높였다고 말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남한의 원폭 개발에 관련된 집안 이야기를 하자면 ‘인천에 성냥공장’은 원산에 고무공장, 수원에 방직공장 등과 더불어 일본 식민지 시절 당시에는 대표적인 선진 산업시설이었다. 화롯불이나 부싯돌로 점화하던 방식에서 성냥의 사용은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리라. 그 회사가 오늘날 폭발물 제조회사 ‘한국화약’의 전신이다.집안의 큰 이모부는 일제시대부터 평생을 그 회사에 다녔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은 이종사촌 형들은 당시로서는 좋은 직장이었던 그 회사에 직장을 대물림 했다.

초등학교 시절, 인천에 사는 큰 형이 공책과 연필을 사 들고는 우리집을 가끔 방문했다. 그런데 형님이 다녀가는 날에는 영낙없이 그날 밤에 남산에서 서울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는 굉장한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무슨 무슨 국경일이었을테고, 나는 오늘밤에 불꽃놀이가 있을 것이라고 동
네 아이들을 모아놓는다. 더욱 신나는 일은 그 불꽃놀이 대포를 우리 형이 쏘는 것이었으니..

남산에서 불꽃 축포를 쏘던 그 형님이 나중에 원폭미사일 책임연구원이 될 줄을 예상하지 못했다. 형은 후일 추진로켓 부문 최고의 과학자가 됐던 것이다.70년대 말에 나는 제대인사차 대전에 사는 형님을 방문했다. 형은 국립과학연구원을 거쳐서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어린 조카들과 식사 후에 나에게 뜻밖에 놀라운 말을 하였다. 우리나라가 원폭제조 능력을 이미 갖고 있으며 바로 당신이 ‘비밀 원폭 제조
팀’ 6인 책임담당 중 한 분이라는 것이다. 책임담당들은 흩어져서 일하고 있지만 박대통령 지시만 떨어지면 즉각 원폭 조립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형은 그 중대한 역사적 비밀을 왜 어린 나에게 말했을까? 바로 그것이 그의 죽음을 이해하는 내게만 남긴 유일한 단서가 될 줄이야...
그 바로 다음 해에 박대통령은 시해되었고 두 해 후에 형님도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박대통령이 추진하던 마지막 사업은 국방 자립을 위한 방위산업-무기 국산화를 넘어선 첨단병기의 개발-이었다. 그리고 ‘원폭보유 추진’이었던 것은 오늘날 알려진 사실이다.

전두환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이 두 사업을 백지화 시켰다. 국방과학연구소와 대전 병기창의 직원은 2만명에서 700명으로 축소되었고 그 와중에 형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3군 사령관의 예우로 의장대가 동원되는 등 성대한 장례식을 치루었지만 나는 형님의 죽음이 단순 사고사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의문은 10년 후에 우연한 인연으로 풀렸다.우리 가족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제 성장해서 전문의가 되어 가장이 된 조카들에게 조차 말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러 설명할 필요 없는 역사의 아픈 편린으로 내 가슴에 접어두기로 한 것이다.

내 이야기의 결론은 남한이나 북한의 치열한 원폭제조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시대적 혹은 시대착오적인 집착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원자폭탄을 쏘겠단 말인가?’이제 미국과 북한은 6자회담을 통해서 북핵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한다. 방글라데시, 벨로우
시 등 기존의 원폭 보유 국가들도 미국의 경제원조를 조건으로 원폭을 완전히 폐기했다.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절에도 서방은 북방 공산국가에 식량을 지속적으로 대량 공급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배 고프면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 제재를 제한적으로 풀고, 북한은 자멸의 신호인 원폭을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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