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당당한 한인들

2007-01-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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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한국은 외환정책이 해마다 바뀐다. 정부에서는 달러를 절약해야 한다고 국민을 계몽하고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에게도 돈을 적게 지참하라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300만 달러까지 풀어주어 해외의 부동산을 구입하도록 정부에서 부축이고 있다. 배경은 달러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벌어들여야만 하는 달러가 아니라 써야만 하는 달러가 되었기 때문이란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라에서 진 부채는 사상 최고액에 달한다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살림살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집안을 사양길로 내몬다고 했다.

한국은 세계 최초와 세계 최대를 너무도 좋아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세계 최초를 부르짖고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나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이다. 그래선지 초등학교 조기 유학생의 숫자도 세계 최대요, 술집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접대부 숫자도 세계 최고이고, 흥청망청 취해서 노래방으로 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세계에서 가장 최대이다. 그 뿐인가 최고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심지어는 음주실력까지 세계에서 당당하게 1위를 자랑한다. 한국의 이런 최고, 최대의 물은 우리 한인사회에도 소리 없이 상륙, 이제는 여기 광고에도 걸핏하면 미주 최대의 ○○, 미주 최초의 ○○, 미주 최고의 ○○라는 문구를 서슴없이 쓰고 있다. 글쎄… 이런 것도 배워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이제는 한인사회에도 보면 예전의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다. 한국의 돈이 많이 유입되어선지 이곳의 상점이나 술집, 또는 룸살롱에서도 한인들의 출입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의 돈 씀씀이가 이곳에 사람들과 다른데다 심지어 시중드는 여인들에게 베푸는 인심또한 이곳에서 살고 있는 현지 한인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후하기 때문이란다.이곳의 한인들의 경우 피땀 흘려 한 푼 두 푼 벌어 모아 가까스로 집 사고 차사고 하는 식으로 절약하는 생활로 살다 보니 돈이 흘러넘친다는 한국의 있는 사람들의 돈 씀씀이를 도무지 흉내 낼 래야 낼 수가 없다. 미국의 한인들은 눈 먼 돈을 만져보긴 커녕, 그냥 생기는 공짜 돈도 만져본 일이 없다. 오로지 아침 일찍 나와 해가 져서야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오는 시계추 생활을 해오면서 돈 한번 제대로 펑펑 쓰고 살아본 일이 없다.

그냥 “어느 날 나에게도 아메리칸 드림은 반드시 찾아오겠지” 하는 소박한 꿈을 안고 오늘도 내일도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과일 야채가게에서 박스를 나르며, 또 어떤 한인은 세탁소에서 하루 종일 조금도 쉴 틈 없이 프레스를 하며, 또 어떤 이는 열심히 딜리버리를 하며 한 푼 두 푼 돈 모으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언젠가는 나도 가게를 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으로 말과 문화, 피부색도 다른 타민족의 손과 발을 닦아주며 즐거움과 보람 감 속에서 일을 한다. 이렇게 건실하게 사는 한인이 우리 사회에 어디 한 두 명인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노리며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뿌리는 거액의 돈들은 투기도 모르고 조용히 살던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부동산 중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런 지 몰라도 머리가 다 빠지고 허리가 휘청거리도록 몇 십 년 일해서 겨우 집 한 칸 마련하고 사는 한인들에게는 너무도 우울하게 만드는 소식이다.
허지만 우리가 그들처럼 정말 못사는 것인가. 나는 우리 한인들이 떳떳하고 맑게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한국에서처럼 부정하지 않고 부동산 투기 안하고 가을철이 되면 밭떼기 매수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아니하고 내 자식 출세시키기 위해서 쓸데없는 치맛바람 안 날리고 모두가 깨끗이 살아왔다. 주부들도 대낮에 백화점 드나들며 명품 사재기 아니하고 호화 레스토랑에 드나들며 쓸데없이 시간 죽이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 자세가 바로 우리 한인들의 재산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돈이 있든, 없든 기죽을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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