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깔아

2007-01-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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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세상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게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화를 삭일 게다. 그러면서 얼굴에는 표정을 내지 않을 뿐일 게다. 진정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만큼 가정교육을 잘 받았을 게다. 가정교육을 잘 받지 않고서, 어릴 때부터 화 안내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 않고서야, 어찌 화를 안내겠는가.

그러니 어릴 때부터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사람의 성품은 태어나기 전부터의 태교에서부터 태어나 유아기를 거쳐 유년기와 소년기에 다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교육을 잘 받지 못한 고아 출신들 가운데도 화를 안내는 사람은 있을 것이니 반드시 가정교육만이 화를 안내게 하는 곳은 아닐 듯싶다. 그렇다면 화를 내는 것은 선천적일까, 아니면 후천적일까. 선천적으로 화를 낼 수밖에 없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 성격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이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게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화를 내지 않게끔 수양과 덕을 쌓는 일이다.


그런데, 이 덕과 수양을 쌓는 일이 어디 하루아침에 된다던가. 수많은 세월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바쁜 세상에 화 안내려고, 덕과 수양을 쌓기 위해 산을 찾아가 도를 닦을 시간은 없다. 도는 반드시 산에서만 닦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 도를 닦아 나가 화를 안내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도일 수도 있기에 그렇다. 가만히 보면 실력 있는 듯 하고 자존심이 센듯 한 사람들일수록 화를 참지 못하고 더 잘 내는 것 같다. 이 말은 잘 나고, 자신의 허물이 적은 사람들일수록 화를 자주 낸다는 말과 같다. 허물이 많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화를 내려고 해도 상대방이 자신보다 실력이 월등히 나으니 오히려 손해를 볼까봐 화를 안내는 경우, 즉 못내는 경우도 있을 게다.

즉, 자존심이 세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 남보다 뛰어난 경우일 때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있고 잘났다 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화를 내는 것은 실력 이전의 교양 문제니 만큼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진정 큰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화를 더 안낼 수도 있다.
그만큼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작은 실력, 작은 자존심이 화를 초래할 수 있다. 큰일엔 화를 못 내거나 안내면서 작은 일에는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그 작은 일이란 약속 시간에 조금 늦는 경우라든지, 물을 쏟았다든지, 키를 잊어버리고 안 가져갔다든지, 편지를 붙여야 하는데 깜빡했다든지 등등 생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소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작은 일에서 발단이 되어 화를 낼 경우 그 화가 큰 화로 바뀔 때가 있다. 이것이 문제다. 약속시간에 조금 늦게 나왔다고 화를 내는 부부의 경우 이런 화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이혼까지 갈 수도 있기에 그렇다. 이렇듯, 화도 자꾸 내다보면 습관이 된다. 습관이 되면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화 잘 내는 사람으로 인정받아 사회생활을 해나가는데 무수한 손해를 감당해야 한다. 결국 화내는 사람은 언제나 손해를 보게 돼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이유를 막론하고, 일단 화를 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큰 손해가 된다. 줄 곧 쌓아왔던 좋은 인격과 좋은 관계가 한 번 화를 냄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깡그리 무너져 내릴 수도 있기에 그렇다. 그럼, 다시 좋은 관계와 좋은 인상을 주려하면 수많은 시간이 흘러야 한다.
그러니 한 번 화를 참음으로 인해 자신에게 오는 이득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항상 헤헤 웃으며 싱글벙글 다닐 수도 없다. 잘못하면 정신병자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을까. 방법은 없을까. “화가
나면 100까지 세어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해본적은 없지만 화나는데 숫자 셀 생각이 떠오를까. 그렇지 않을 게다.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게다. 그렇다면 화가 난 얼굴과 목소리를 어떻게 화 안 난 얼굴과 목소리처럼 하고 살아갈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녀야 하나, 포커페이스로 살아가야 하나. 아니면 살아도 산 사
람이 아닌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야 하나. 이렇게 하면 어떨까. 화를 내되 화 안 난 얼굴처럼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얼굴은 부드러운 미소를 하고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들릴 듯 말듯, 조용조용히 얘기하는 것 말이다. “부드러운 미소로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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