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의 헛바퀴를 돌리는 사람들

2007-01-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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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중남미 대륙을 여행하다 좌익정당 건물이나 선물가게에 들어서면 혁명구호가 쓰여진 체 게바라의 사진이나 포스터를 보게 된다. 쿠바의 카스트로를 도와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그는 정열적으로 공산주의를 숭배한 아르헨티나 태생의 게릴라 전사였다.

카스트로와의 정책상 불화로 자취를 감춘 후 동키호테처럼 볼리비아에 스며들어 파괴활동을 하다 정부군에 의해 67년 사살되기까지 남긴 사진 한장 없었으나 죽어서는 한장의 원본으로 수많은 사진을 만들게 했다.
원판은 이태리의 좌익 출판사원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50여명의 게릴라가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찍은 것이고 그의 얼굴은 콩알 정도 크기의 선명치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크게 확대한 후 검은 색만을 강하게 넣어(high contrast) 프린트 해 셔츠, 포스터, 뱃지 등에 복제해서 전세계에 뿌려졌다. 이제는 관광상품에서나 볼 수 있지만 크레물린 궁에서 붉은혁명기가 내려지기 전까지 이 사진은 직업 게릴라 전사의 아이콘이었다.


같은 방법으로 처리된 박종철군의 거대한 사진을 걸어놓고 열린 서울에서의 그의 추모행사는 그가 도시 게릴라로서 체게바라의 후계자로 50년 후에 서울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행사 주최측은 군사정권은 운동권 핵심도 아닌 학생을 고문으로 죽였고, 이제는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세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자신들이 근대 한국정치 역사를 집행하고 있다는 얘기다.당시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게 한 원인 제공은 군사정부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세력이 군사집단 뿐이라면 4.18 때 신입생으로 데모대 앞줄에 있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웃기는 얘기다. 싫더라도 사실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따라 학생운동 공연장으로 들어가 볼 것을 권유한다.

박종철 군의 죽음을 전후한 학생 데모는 무장폭동에 가까웠다. 총만 안 보일 뿐 폭력이 상식화 되어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경찰을 공격하고 미국 공관을 불태웠다. 부상자가 속출하는 전쟁 상황에서도 약삭빠른 선배나 운동권 학생은 미대사관 창문에 매달려 상처뿐인 것으로 끝났을 뿐, 죽거나 다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늘에는 정치적으로 민첩한 그들이 됐지만 실은 민첩해서가 아니라 폭력데모 준비와 함께 신입생들을 선동한 후 자신들은 뒷문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운동권 핵심인물이 아닌 종철군이 죽은 이유이다. 강의 때문에 등교했다 선배들의 위협적 강요에 의해 데모대 선봉에 합류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투적 도시 게릴라 전사가 되어지는 것이다. 앞줄에 선 신입생은 경찰에 잡혀 참기 어려운 고생을 겪게 되나 이들의 고통을 짚고 넘어선 선배간부들은 민주화 투쟁 전사가 되어 정치적 성공의 길을 약속받으면서 역사의 헛바퀴를 돌리는 주역이 되어진 것이다.

4년의 대학생활 동안 글 한편 쓴 적 없고 한권의 책도 읽지 않은 채 자기 도취에 빠져 부정적이고 파괴적 성품이 구석까지 응집된 증오에 찬 이들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섰을 때, 더구나 이들이 좌익사상에 물들어 있을 때 그 해독의 정도는 현재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쉽게 알 수 있다.긍정적인 인성을 말한다면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퇴임할 때쯤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는 지금보다 통일에 더 접근해 있을 것이다. 화합의 상징으로 남북 합의하에 그를 통치권 없는 대통령으로 추대해 통일의 중추인물로 만든다면 그 통일은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남북에는 많으나 이만한 인물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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