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2007-01-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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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숙(유스앤 패밀리포커스 대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극작가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라고. 이런 분야는 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야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 그것도 삶에 어려운 상황, 때로는 극단적인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치장과
위선이 있을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본연의 모습들을 대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기에 나는 사람과 삶에 대해 늘 긴장하며 진솔하게 대면하며 살아야하므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진실하고 솔직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약점을 숨기려고 하는 노력이나 거짓들이 내게는 그대로 보여지며 거기에서 사람의 숨겨진 의도와 마음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기에 인간적인 본연의 모습이라고 표현하는 것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 그것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오는 사람들을 늘 대면하며 일을 하는 나는 지금 내가 돕고 있는 노력과 정성의 결과가 과연 내가 늘 바라고 기대하는 목적, 즉 상대의 삶의 가치와 질의 변화를 이루겠는가라는 것에 늘 도박을 하는 심정이다.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는 출감 후의 성공적인 사회 적응, 검정고시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섰던 자리에 다시 돌아가 정상적인 학업과 가정의 관계 회복, 피상담자들에게는 문제 해결을 통한 자신의 존재가치 회복을 위한 의미있는 삶 등이다.그러나 나는 솔직히 고백한다.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는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즉 나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 한 마디로 실패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천상의 시나리오 즉, 나의 기대와 꿈을 초월하는 결과들, 내 자신도 믿기지 않을 만큼의 결과들을 내 주위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통해서 날마다 보고 있는 그 증거들이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케이스 중 또 다른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고 있는 케이스가 있다. 교도소에서 우연히 온 전화의 절박함의 그 목소리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나는 그 1주일이 마치 007작전이 무색할 정도의 숨가쁘고 숨이 목에 차오르는 마음으로 동분서주하면서 뉴멕시코의 이민국에 있는 한 재소자를 한 교회의 도움으로 보석금을 구해 보석시켰다.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이 일에만 매달리며 다 해결을 해놓고 마지막 보석시키는 이민국에서 꼬박 하루종일 기다리며 나는 내게 묻는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얼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러나 내 가슴은 대답한다. ‘그 사람의 삶의 질과 가치를 찾게 하기 위해서’라고…그런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처음 대면인 것이다. 그리고는 횡설수설 형식적인 인사만을 남기고 주소도 전화번호도 주지 않은채 곧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그녀가 절박한 어려운 상황이 되기 전에는 연락을 안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이 케이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40여일을 지났다. 1월 1일, 나는 그녀의 처음 전화보다 더 형편없이 절박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동거남에게 몹시 심하게 구타를 당해 실신상태에 있다는 전화이다. 그녀를 픽업해 경찰서로, 병원으로, 그리고 무숙자를 위한 한인 쉘터로 이렇게 일을 진행시키면서 나는 내게 또 질문한다. ‘현실적 어려움과 필요만을 위해 돕는 것을 뛰어넘어 이 사람의 건강하고 질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본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하는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내게 지난 16년 동안 끊임없이 갈등하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인 것이다. 피상담자들에게 bagger mentality(입고 먹는 필요만을 해결해 주고 도와주는)를 만들어주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들에게 아픔과 불편을 느끼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찾아나가게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자리가 이난 다른 자리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을 사람과 일을 통해서 배우는 나는 오늘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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