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 최혁규 하사

2007-0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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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나는, 분명히 웨체스터 카운티에 속해있는 Mt. Kisko 작은 동네에서 거행한 최혁규 하사의 마지막 떠나는 장례식에 다녀온 지가 두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최상수 회장의 아들인 그 젊은이가 전사를 했다고 믿지를 않고 있다.

학업을 마친 젊은이들이, 좋게 말해서 특별한 이기심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남보다 잘 되어보자고, 아니 출세를 해야 한다고 동분서주 할 때에 최혁규 하사는 밤과 낮의 온도 차이가 극심한 아프가니스탄 오지에서 아무런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없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외롭게 전쟁의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했다.그의 나이 34,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고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찾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터. 이라크에서 전쟁의 임무를 무사히 끝낸 후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아내와 5살 된 아들과 생후 10달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재롱 섞인 웃음이 하루의 아침 창문을 활짝 여는 그리웠던 집으로 돌아와 행복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며 새삼스레 화색을 얼굴에 가득 담고 지내면서도 중동지역에서의 전쟁으로 인하여 참상을 겪고있는 그들의 고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 한번 갔다 오면 가지 않아도 될 아프가니스탄으로 자원 참전하여 목숨을 산화시킨 최혁규 하
사. 이민의 역사가 점점 길어지고 우리들의 아이들이 점점 자라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먼 남의 일이 아닌 우리들의 슬픔이다.


이민의 정착지인 미국이 이제는 나의 나라가 되었다는 아버지의 공손한 국가관, 자손 만대 이어가며 살아갈 이 나라에서 그냥 돈이나 벌어 호의호식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이민가족을 보호해 주는 이 나라에 대한 떳떳치 못한 의식이라고 느꼈던지 사회봉사를 위해서라면 동서남북으로 뛰어다니는 고단한 발 품에 물심양면까지 아끼지 않고 얹어 고뇌하던 아버지의 속뜻을 알아서였는지, 병사가 부족한 이 나라에 기꺼이 보탬이 되고자 육군에 자원 입대한 최혁규 하사.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고 미국에 온 것은 병사가 되어 전사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미구그이 시골길을 가다 보면 웬만한 작은 동네에는 2차대전과 한국전, 그리고 월남전에서 전사한 젊은 병사의 이름들이 전몰장병 현충비(顯忠碑)에 새겨져 오고 가는 사람들을 풀리지 않는 의문의 서글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왜 싸워야 하는가? 이념이 다르다고 싸워야 하는가? 종족이 다르다고 싸워야 하는가? 종교가 다르다고 싸워야 하는가?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고 싸워야 하는가? 우리는 싸우기 위해서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전쟁의 희생물이 되기 위하여 세상에 온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도 싸움을 말린다는 명분이니 싸움의 불씨를 키우는 자를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어제의 친구였던 그들을 적으로 삼고 또 싸운다.
그리고 “왜 싸워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품고 많은 젊은이들이 맥없이 청춘을 놓고 전사한다. 죽음이란 육신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영혼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여서 세상을 살면서도 이승과 저승의 본적지를 따로따로 두고 있다가 때가 되면 육신은 흙으로 가고 영혼은 하늘로 돌아가며 헤어지는 것이 정해진 이치이지만 이승살이 온당하게 다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억울함과 슬픔은 입으로서 대신할 길이 없다.

136 American Legion Hall의 단상 위에 자랑스럽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과 훈장들, 입구에서 보여주는 그의 일상생활의 많은 사진들, 특히 고개도 채 들지 못하는 아들을 따스한 품에 안고 있는 그의 사진은 참석하는 사람들 가슴에서 에밀레의 종소리를 울리고 있었다.상원의원인 힐러리 로담 클린턴 여사는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는 유족들과 참석한 한인들에게 미국 주류의 일원으로서, 미국을 이끄는 정치인으로서, 아이들을 키운 어머니로서, 죄지은 모습으로 단상도 아닌 마루바닥에 서서 정중한 조의의 말을 하고 있었다.

죽음 앞에는 할 얘기가 없다. 그저 고인과 고인의 가족들에게 정중할 뿐이다. 힐러리 여사도 정중하고 현역이나 재향군인들도 정중하고, 캐나다에서 온 Piper 악대의 발걸음도 정중하고, 성조기도 정중하다. 눈물이 고인다. 생이별에 대한 억울한 눈물이 두 뺨에 흐르고, 하늘 가는 밝은 길에서 뒤돌아보며 맑게 웃는 그의 모습에 저미는 눈물이 가슴속에 고인다. 육신을 놓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탄생하지 못하는 인간 생명의 본질, 2006년 10월 26일, 최혁규 하사는 육신을 이승에 맡겨놓고 하늘나라에 탄생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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