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우리의 것을 찾아서...

2007-01-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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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지난 연말 세계적인 뉴스 전문채널이라는 CNN은 한국에서 최근 방영된 드라마 ‘황진이’에 대한 기사를 실으며 한국의 기생열풍을 집중보도한 바 있다.

‘S. Korea idolizes ‘geisha’ girls’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기사는 첫 문장에서부터 한국의 기생을 일본 ‘게이샤’의 한반도 버전이라고 버젓이 소개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 사례를 제시하는 것은 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내용을 들어 상대방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CNN의 기사는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고 불쾌감마저 안겨줬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그랬다…
시기적으로나 역할에서나 훨씬 앞서 있는 조선의 ‘기생’을 일본 ‘게이샤’라고 설명해야 미국인들의 이해가 빠르듯 철저하게 일본을 기준으로 한국의 것을 설명하고 소개해야 하는 상황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고 있다.


‘된장’ 대신 ‘미소(Miso)’, ‘두부’ 대신 ‘토푸(Tofu)’, ‘고추냉이’ 대신 ‘와사비’, ‘김치’는 ‘기무치’로, ‘독도’는 ‘다케시마’로, ‘동해’는 ‘일본해’로 설명해야 알아듣는 세상이니 말이다.
게다가 얼마 전 열린 뉴욕 일원 공립학교 타민족 한국어 학습생 대상 한국음식 웍샵에서 교사가 한국식 ‘김밥’을 일본의 ‘스시(초밥)’라고 설명해야만 했던 상황은 기자가 무슨 대단한 애국심을 지닌 것도 아니건만 은근히 울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오랜 역사와 훌륭한 전통문화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것을 온전히 한국의 것으로 알리지 못하고 일본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뿐만 아니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동원됐던 ‘위안부’를 일본식 표현 그대로 ‘Comfort Women’으로 영문 표기하는 것도 철저히 일본의 관점에서 채택된 용어들이지만 대다수 한인들조차 별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도 반드시 시정돼야 할 문제들이다. 요즘 뉴욕과 보스턴에서는 미국판 한국역사 왜곡 교과서 사건’으로 지목된 ‘요코 이야기’<본보 2006년 12월16일자 A3면 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 일본인의 그릇된 시각에서 비춰진 일본 패망 후 한반도의 상황이 마치 역사의 모든 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미국 학생들에게 오랜 기간 교육돼 왔다는 현실의 심각성은 가늠조차 하기 힘들 정도다.

지난 주말 미 전국 각지에서는 ‘미주 한인의 날’을 기념해 성대한 잔치가 한바탕 펼쳐졌다. 미주 한인의 날 제정은 한인들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한인사회 자체 평가에 발맞춰 그간 우리가 철저하게 무시당해 온 우리의 것을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각자 한번쯤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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