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다리 긁지 맙시다

2007-01-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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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퀸즈 아스토리아 월드매너 연회장, 꽃다발과 4박자가 넘쳐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K씨의 후원회 결성 및 강연회가 대뉴욕 동포 지도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같은 시각 플러싱 금강산 식당, 60명도 안되는 청중을 상대로 미합중국 하원의원 동포 김창준이 미주한인의 정치력 신장을 역설하며 열변을 토하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시각에 벌어지고 있었던 아스토리아 월드매너 소식도 듣고 있었다. 나는 동포들의 들쥐 근성을 원망하고 증오하면서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 썰렁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했던 장내를 초연하게 극복하면서 연설을 이어나간 당시의 김창준 의원의 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다.


2007년은 조국의 대권을 가름하는 매우 중대한 선거의 해이다. 특히 조국의 국론이 보수 대 진보로 첨예하게 양분된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 대한 관심이 동포사회에서도 열병과도 같이 고조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 선거에 대한 관심이 해외 거주자라는 냉엄한 현실을 망각하고 패거리를 나눠가며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신이 아니라고 본다.

때때로 나 자신도 여기가 뉴욕인지, 서울인지 착각할 때가 있다. 결코 무리가 아니다. 세계는 일일권이요, 특히 뉴스는 동시권이다. 그러다가도 현실을 직시하면 조국과의 사이에는 태평양이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조국의 선거에 냉담하고 냉철한 관심 이상의 행동은 백해무익하다.
죽어서 천당은 물론 지옥까지 날아온다는 미국의 세금 고지서! 그 세금을 어디다 내는지 생각해 보자. 미국인지, 한국인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으뜸가는 의무인 미국 납세자로서 비록 조국의 선거라 하더라도 후보자에 따라 대뉴욕 ○○○후원회, 아니면 ○사모회를 조직하여 동포사회에 불신과 반목을 야기시키면서까지 선거 열풍을 과열시켜야 하는지 이 사람은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식의 패거리, 떼거리 행위가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득표에 영향을 주리라는 계산된 행동이라면 이것은 오산이다. 오늘의 한국의 정치 사회적 풍토로 보아 오히려 냉소적 거부반응만 부추길 뿐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선거문화와 유권자의 수준은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비해 자신이 이민 올 때 그 때 수준의 한국에 대한 정서를 버리지 못하고 이름하여 ‘소양교육’ 수준에 머물고 있는 동포사회의 저변을 통탄한다.나는 어떤 면에서 해외동포에 대한 모국의 선거권 부여를 반대한다. 선거권이 없는 지금도 한국 선거에 이렇게 과열되는 판국인데 만일 여기에 선거권마저 있다면 가히 ‘정치 떴다방’을 방불케 할 것이다.이런 해외동포사회의 정치 풍토를 야기시킨 중대한 원인 제공의 출처는 바로 해외를 드나드는 모국 정치인에게 있다.

대권주자, 국회의원 출마자 할 것 없이 뉴욕에 와서는 경쟁적으로 ‘후원회, ‘○사모’를 만들어대고 있다. 강연장에서는 ‘뉴욕동포들은 조국 걱정은 하지 말고 모두들 부자가 돼 훌륭한 미국 시민이 되어달라’는 격려의 말은 고사하고 한국 정계의 치부만을 노출시키고 정치 위기를 극대화시키고 심지어는 민주정권에 대한 ‘타도’라는 말도 여과 없이 토하고 있다. 한심하고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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