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말은 곧 인격이다

2007-01-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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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20세기의 저명한 기호학자 비튜겐슈타인은 ‘언어는 사상의 집’이라고 했다. 어느 사람이 어떠한 말을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 말은 그 사람에 대한 면모를 알게 한다. 만일 누군가 독일어로 말을 하면 독일인임을 금방 알게 되고, 또 러시아나 프랑스어로 말을 할 경우 “아, 그가 러시아인이고 불란서 사람 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의 내용에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뜻, 그리고 생활방식에 대해서도 쉽게 가늠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 말은 그 사람이 가진 지적수준이라든가, 도덕수준, 심지어는 성격이나 성품까지도 면밀히 알 수 있게 한다. 때문에 말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하는 비튜겐슈타인의 명제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즈음 한국이나 이 곳 한인사회를 보면 그야말로 말 때문에 말이 많고 말로 인해 몹시 시끄럽
다. 한 나라의 지도자나 조직이나 기관의 대표들이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면 본인이 망신 당하는 것은 물론, 온 나라, 온 사회가 난리법석이다. 특히 공직자나 한 사회를 대표하는 공인들의 말 한마디는 보통 사람이 하는 말과 달라 잘못 토해낼 경우 그 파급 효과가 상상외로 클
수 있다.


그러므로 공직자나 단체의 대표자는 공석이나 사석에서 조차 말을 신중하게 하고 단어선택 까지도 사려 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사회에는 일부 단체 대표들이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흉내를 내는지 말을
함부로 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어떤 한인은 그런 사람을 “링컨대통령 만큼이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말이란 적거나 많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직하거나 진실 되고 투명한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국사회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가장 큰 도덕적 범죄로 취급한다. 한인들은 이 점을 유의해서 영주권 인터뷰나 취업 인터뷰 때 사소한 것이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있으면 차라리 솔직히 말해야지 궁색한 거짓말을 해서 드러나는 경우 그 사람의 전부를 불신하
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거짓말을 아주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더군다나 공직이나 조직에 있는 리더들이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본인의 도덕성이나 신뢰감에 크
게 흠집을 내는 일이다. ‘검증된 사람이다, 아니다’란 이야기는 바로 그래서 나오는 말이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곧 그 사람이 지닌 인격이나 지적 수준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한마디의 말은 바로 그 사람을 대변하는 가장 명확한 척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공인은 물론, 개인들도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하고 단어 한마디 한마디도 신중히 해야 할 일이다.

말이란 사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친구나 부부, 가족 간에도 무책임하게 던지는 한마디는 평생 동안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 속담에 세치도 안 되는 ‘혀끝을 조심하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듯, 말 한 마디 잘못해서 수 만량을 손해 보는 경우도 있지만 말 한마디 잘 해서 있던 빚도 탕감하는 예도 없지 않다. 자살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말 한마디는 용기와 힘이 되어 목숨을 구제하기도 한다. 그만큼 말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이 핵을 가지고 세상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것도 다 이 세치도 안 되는 혀에서 나오는 말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란 하기는 쉽지만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닐까.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차라리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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