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믿음

2007-01-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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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부 기획취재부장)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토록 노력하고 있는 미국은 ‘트러스트 벗 베리파이’(Trust But Verify), 즉 ‘믿지만 확인한다’는 문구를 사용한다.
이는 핵 포기에 있어 북한으로부터 그 어떠한 약속을 받아내더라도 북측이 실제로 약속을 이행하는가를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북한 핵 문제가 붉어진 이후 미국과 북한은 다양한 형태로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진척은커녕 더 악화돼가고 있는 것에 대해 그동안 “쌍방간에 ‘믿음’(Trust)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어왔다.
미국, 북한과 함께 6자 회담을 벌이고 있는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나머지 4개 국가 중 일본을 제외한 3개국이 미국과 북한에게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해왔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과 한번 맺은 약속을 북한이 이미 깼기에 그들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는 미국이 핵 협상 과정에서 사용하는 ‘믿지만 확인한다’라는 단어는 사실상 ‘믿음’과는 거리가 멀다.‘믿음’이라는 단어에 이어 붙여진 ‘확인’이라는 단어가 그 앞에 있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부인하고 무효 시키기 때문이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검증 없이 증거 없이 있는 그대로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하는데 검증 절차를 거치고 증거로 확인을 한다면 이는 믿음이 아니라 ‘확신’(Confidence)이 된다.따라서 미국의 ‘트러스트 벗 베리파이’라는 문구는 ‘확인에 따른 확신’(Confidence After Verifying)이 더 가까운 해석이고 또 이것이 실제로 미국이 뜻한 ‘믿음’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확신’이다. 서로가 검증을 하고 증거로 확인해 얻는 ‘확신’ 말이다.비록 북핵 문제와 같이 지역 안보와 국제사회 평화에 위협이 제기되는 중대사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 주변에는 ‘믿지만 확인한다’로 간단히 해결 될 수 있는 크고 작은 분쟁이 널려있다. 믿음을 잃은 측이 상대측에게 확신을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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