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 없는 다수의 생각은?

2007-01-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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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전 은행인)

이 넓은 천지 미국땅에 비해 눈꼽만큼도 안되는 작은 한인사회가 도대체 조용할 날이 없으니 내남직 모두가 딱하기 한량없다. 별 보고 나가 달 보고 집에 돌아오는 고달픈 이민살이에 무슨 단체가 그리 많고 탈도 많아 정작 휴식이 필요한 동포사회에 짜증만 증폭시킨다.

한인회에서 코리안 퍼레이드를 중복 신청했네, 한인회가 주최 주관을 맡아야 하네, 한인회의 석상에 한국일보 기자는 출입을 금지시켜야 하네 해서 만에 하나 법정으로라도 비화된다면 정말로 엽전 소리 들을까 겁이 난다.
세상 일이라는게 굳이 노자 장자를 들추지 않아도 그냥 내버려두면 만사 조용할텐데 남의 것을 뺏으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뉴욕한인회가 뉴욕한국일보가 오랜동안 주관해 온 퍼레이드 행사를 한인회로 이양해야 된다는 논리는 한인회가 일개 신문사보다는 상위 개념에 존재한다는 논거에서 나온 말이다. 길에서 주운 물건을 갖고도 주인을 못 찾았을 경우 제일 먼저 주운 사람의 기득권이 인정되는데 수십년 전부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개척한 고유 사업을 내놓으란다고 “예, 여기 있소” 덜컥 내놓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여기가 평양인가 모스크바인가.

자본주의 사회, 특히 미국에선 일초 일각 째깍째깍 소리가 돈 굴러가는 소리이지 시계 소리가 아닌 것이다. 20~30년 전 왜소하고 척박한 한인사회에서 어떤 사명감이나 모험심으로 전세계 민족 앞에 한국의 존재를 알리는 이벤트를 빌려 대한의 위상을 알리는 쾌거를 이루었으면 응당 그에 대한 보상이 뒤따르게 마련이고, 신문사 사유(私有)의 고유한 문화재(文化財), 즉 신문사의 자산이란 얘기인데 그 누구도 달라고, 빼앗으려 할 권한이 없다.

지금 한인회에서 한번도 아니고 두차례 씩이나 중복신청을 해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불순한 목적의 고의성도 엿보인다. 또 있다. 한인회 자체에서 특정신문 불매운동을 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공적 회의에 취재기자의
출입을 봉쇄하는 것은 전제, 독재, 사회주의에서나 있는 일, 매우 위험하고 시건방진 발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빨리 노무현 신드롬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포사회를 그리도 끔찍히 생각한다면 다시 묻자. 재미한인총연합회의 위상은 뉴욕한인회 보다 훨씬 상위 개념에 속한다. 만약 미국내의 전 한인단체의 모든 행사는 총연합회에서 주관할터이니 뉴욕한인회도 그 명을 따르라면 어찌할 것인가.

옛날 어른들은 남녀노소 손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도 새끼들 입에 보리쌀 한 알이라도 더 넣어주려고 너덜겅 산비탈을 따비밭으로나마 개간했다. 이것이 이른바 개척의 참 의미요,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의 창출이다. 뉴욕한국일보도 퍼레이드를 그렇게 개척해서 얻은 자산이고 기득권이니 빼앗길 리도 없지만 빼앗으려 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한국의 언론사, 특히 신문사들의 명예랄까, 자부심이랄까. 많은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봉황기, 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 무슨 배, 바둑, 씨름, 미스 대회… 아둔한 필자의 머리로는 기억할 수 없을 만큼 대회들이 거의 모두 신문사 간판을 걸고 관행적으로 해왔던 것들이다.

뉴욕한국일보라고 예외일 수가 없을 것이니 신문사의 명예는 곧 그들의 생명인데 그들의 명줄을 끊으려 한다면 족두리 쓴 갑순이 모양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공갈도 회유도 말고 구관이 명관이려니 하고 없던 일로 하면 시끄러운 한인사회가 그나마 좀 조용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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