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위선자들에게 속지 말자

2007-01-1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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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직업 중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직업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장사의 경우 원가가 얼마인데 얼마에 팔겠다고 곧이 곧대로 말한다면 물건을 사는 사람은 바가지 요금이라고 펄쩍 뛰게 될 것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 장점은 있는대로 다 설명하지만 혹시 단점이 있을 경우 되도록 숨기려고 할 것이다. 또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 제대로 세금을 내는 장사꾼은 아마 동서고금을 통해 거의 없을 것이다.

정치판에서도 거짓말이 판을 친다. 정치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에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데 거짓말이 없을 수 없다. 권력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별의 별 거짓말을 다 한다. 국가와 국가간의 외교에 있어서도 국익을 위해서는 거짓으로 위장된 책략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의 세계 속에서도 거짓말은 타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계속하면 신용을 잃게 된다.


장사에서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장사에 귀재인 중국인이나 유대인이 신용을 얼마나 절대적으로 여기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또 정치판에서도 거짓말을 계속하여 신의를 잃게 되면 발붙일 곳을 잃게 되고 국민을 계속 속이는 집권자는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게 된다. 국가간에도 신뢰를 잃으면 우호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신용이나 신의나 신뢰는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이런 덕목은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데서 쌓인다. 어느 세계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불신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지만 한국인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하는 이중성이 많은 것 같다. 예를들어 기자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미국인들은 답변하기 곤란할 때 ‘노 코멘트’라고 한다. 답을 하지 않겠으니 알아서 생각하든지 상관 않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럴듯 하게 대답을 할 것이다. 나중에 그 대답이 문제가 된다면 “진의가 아니다” “와전됐다”고 발뺌을 하기 일쑤이다.

살아가다 보면 거짓말을 안 할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자와 학자, 교육자가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 그런 사람들의 거짓말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는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건이며 또 교육 부총리의 논문표절 의혹, 최근 고려대 총장의 논문과 저서 표절 의혹 등은 도저히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들이다. 한때 외설시비로 화제를 일으켰던 교수시인은 제자의 시를 통째로 베껴 자신의 시로 둔갑시켜 시집을 발간했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한국에서는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거짓말과 위선이 도를 넘은 것 같다. 입만 열었다 하면 민주주의를 찾는 정치인이 하는 일은 독단과 독선에 가득 차 있고 부정부패를 막고 사회 기강을 바로잡아야 하는 검사, 판사, 심지어는 대법원장까지 탈세를 하고 부정을 하는 판이다. 세상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고 옳은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종교인들이 뒤돌아서서는 싸움을 일삼고 부정한 축재를 서슴치 않고 있다. 사회의 지도층이 이럴진대 무엇을 보고 배우란 말인가. 이렇게 하여 개인의 이익과 이기심을 채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이 세상을 타락시키는 주범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거짓말과 언행불일치, 위선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다보니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경향이 있다. 차라리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위선이 없다. 겉으로는 번지
르르한 말을 하면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더 교묘한 수법으로 나쁜 짓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한때 “나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DJ가 불출마 약속을 뒤집고 대선에 나왔을 때 한 말이다. 오늘날 위선적인 사회 지도층을 대변해주는 괴변인지도 모른다.

일전에 어느 독자로부터 이러한 위선자들을 개탄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참으로 그렇다. 우리의 역사나 현재의 사회에서 말은 그럴듯 하게 하면서 실제 행동이 실망을 주는 위선자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분노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한인사회에서도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종교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언행이 진실로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위선자들을 가려내어 그 위선에 속지 않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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