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문인의 후손들

2007-01-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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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행(시인)

신문들은 원로시인 마종기씨의 영문시집의 출간을 일제히 보도하면서 이 시집에는 의사로서의 감상이 담긴 초창기 시에서부터 은퇴를 앞둔 시인의 완숙한 삶의 모습을 담은 편편의 시가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한국 시인의 영시집을 한인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구입해 주기를 권유하고 있다.

내가 마 시인의 시집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 세대, 아니 우리 뒷 세대들 모두 마해송 선생의 동화를 읽지 않고 자란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우리의 자식, 또 그 자식들까지, 그리운 선생의 동화를 읽으면서 어린 꿈을 키워갈 것이다. 그 선생의 아들이 시인이라니 더욱 반갑기 그지없다.
뉴욕만 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의 조지훈 시인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인의 길을 걷고 있고 ‘파초’의 시인 김동명 선생의 딸도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아버지를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밖에도 노산 이은상 등 여러 빛나는 문인들의 자손이 미국 곳곳에 살고 있다고 하니 너무나 반갑다. 풍문에 의하면 김소월 시인의 손녀가 뉴욕땅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길이 없다.
이번에는 “아, 강낭콩 보다 더 푸른 물결위에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의 논개 시인 변영로 선생의 아들이 책을 펴냈다고 한다. 뉴욕에 거주하는 변천수씨는 아버지의 뒤를 잇는 문인은 아니지만 유년, 소년, 청년시절을 거치면서 그가 뵈어온 아버지를 회상하고 이민 후 미국생활 반세기의 애환을 추억하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변영만, 변영태, 변영로 일가는 일제에 항거하던 반골이며 삼형제가 법학자, 정치가, 문인으로 모두 영문학에 천재성을 보이던 학자 집안이다. 변천수씨는 회고록과 함께 반평생을 가르쳐온 영어를 집대성하여 <미국식 생활영어 백과>를 함께 펴냈다. 민족의 정기를 보여주는 논개 시를 생생하게 회상하는 글로서 민족의 긍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회고록도 회고록이려니와 동포들의 영어에 대한 한을 풀어주려고 지난 5년간 집필하였다는 영어백과도 그의 대단한 집념을 보여준다.

나는 여기서 마 시인이나 변선생의 책 광고를 하여 그들을 치부케 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왜냐하면 몇 푼 안되는 시집이 아무리 많이 팔려도 출판비나 겨우 나오겠고 변선생의 두 권의 책도 출판비는 커녕 판매대금을 몽땅 그와 동포들이 힘 모아 건립중인 뉴욕한인 커뮤니티센터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시집을 많이 사 읽어 영시에 녹아 흐르는 코리언의 긍지를 높이고 변선생의 회고록과 영어백과를 통하여 초창기 한국문학을 반추해 보며 또 영어의 한도 풀고 동포사회의 사랑방이 될 센터 건립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가 아니라 삼조, 사조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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