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망의 여명

2007-01-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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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권(목사/동부제일교회)

고속도로에서 길을 놓침으로 당황해 한 경험을 누구나 한 두번은 겪었을 것이다. 미국 와서 처음 차를 산 후 남의 차에 편승하여 교회로 가는 신세를 겨우 면하고 내 차로 가는 첫 길이었다. 정신없이 앞만 보느라 싸인을 읽지 못해서 빠져나가야 할 출구(Exit)를 놓치고 말았다. 한참 헤맨 후 천신만고로 겨우 교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예배당 문에 들어섰을 때는 목
사님이 손을 높이 들고 축도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주일 낮예배를 그렇게 빨리 마친 것은 내 평생 그 때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이 일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기가 걸어야 할 길만을 똑바로 걸어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평생토록 딴 길로만 헤매다가 보람 없이 헛되게 생을 마치기도 한다. 바른 길을 두고 빙빙 둘러서만 가는 사람들도 있고, 한참 딴 길로 가다가 바른 길을 찾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은 것을 알게 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바른 길로만 걸어가지 못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자신이 걸어야 할 길로만 시종일관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병으로 인하여 불행한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요한복음 5장에서 읽게 된다. 그는 3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직 병에 매어 사는 인생길을 걸어왔었다. 예수가 탄생하기 4,5년 전에 병을 가지게 되었고 예수가 그를 만난 때는 예수도 30세를 넘긴 후였다. 그 때도 그는 여전히 병으로 고통하며 신음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예수가 그에게로 가서 그를 만난 것은 유대인들의 명절날이었다. 유대인들의 어느 명절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베데스다 못가의 온갖 병으로 시달리는 많은 병자들에게는 유대인들의 대 명절도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 못의 물이 때때로 뒤집히며 요동하였는데 사람들은 천사가 내려와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믿었다. 물이 뒤집힌 후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드는 자는 어떤 병이든 낫게된다는 속설을 믿고 각 처에서 중한 병자들, 혹은 의원에게 갈 형편이 못되는 자들이 이 못으로 모여들었다. 38년이나 오직 병에만 매어 살았던 그 병자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병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중풍으로 인한 반신불수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할 뿐이다(8절). 그도 물이 요동한 후 자기가 먼저 내려가기만 하면 자기 병이 나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7
절). 그러나 그는 한번도 물에 먼저 내려가 보지 못하고 기나긴 세월 동안 물만 바라보며 슬픔과 고통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에게 예수가 찾아왔다. 예수는 그의 병이 이미 오랜 줄을 알았다. 아마도 그는 고희(古稀)를 훌쩍 넘겼는지도 모른다. 투병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가족들에게까지 버림받았던 것 같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는 이렇게 물으며 자기에게로 온 예수가 자신의 병을 고쳐줄 주님임을 믿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물이 요동할 때 혹시 자기를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사람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7절). 주님이 일어나 걸어가라고 그에게 명했다. 주님의 말을 듣고 그는 순종했다. 그렇게 하여 그는 38년이라는 기나긴 애환의 세월을 청산할 수 있었다. 너무 늦었지만 정상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희망에 부푼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일년을 여삼추(一年如三秋)로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해마다 나아지겠지, 기다리며 보낸 고달픈 한 해였을 것이다. 주님은 고통하는 자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찾아온다. 주님은 베데스다 못가의 38년이나 고통으로 신음하며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이던 그 병자에게 찾아와 소망의 여명을 비춰주었다. 2007년을 맞은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게 소망의 여명을 밝혀주도록 마음 모아 축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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