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386의 정치학

2007-01-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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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부장대우)

원래 제목을 ‘386을 위한 변명’이라고 하려다가, 굳이 변명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바꿨다.한국에서는 386 세대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 모양이다. 흔히 아마추어들이 나라를 망쳤다거나, 친북세력,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라는 식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 같다.
새해 벽두부터 정치 얘기를 하게 돼 안됐지만,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에 이르러 있는 386세대들이 무에 그리 잘못했길래 그렇게 많은 욕을 먹는 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386세대의 생리적인 동질감은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70년대말 유신시대에서 보냈고, 고교나 대학 때는 5공 시대를 거쳤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는 고도성장의 문턱을 넘기 직전이었다. 초등, 중, 고교 시절에는 어려웠던 한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자랐다. 대학시절에는 오렌지족이라는 일부 상류층의 사치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여전히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이념적으로 북한은 뿔달린 도깨비들이 사는 나라로 배웠다.


국가나 조직의 성장을 위해 개개인의 권리가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것을 지적하면 빨갱이라고 매도되는 세상이었다. 돈과 빽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세상의 통념도 그 당시에 흔히 들었던 얘기다.시대마다 시대 정신이 있기 마련이다. 성장 과장이나 생각의 차이는 있지만 386세대라는 동질감은 남들이 강요한 권위에 대한 도전과 비판정신인 것 같다.
시대가 변하면서 그동안 강요됐던 사고에 대한 강한 반발 같은 것이다. 70년대의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이전 세대나 대략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고도성장의 맛을 본 X 세대들과 구별되는 까닭이다.

386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잘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민주화를 이끌어냈다던 386세대가 지금 와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고소한 느낌도 있다.다만 일부 언론이나 보수 논객들이 우후죽순처럼 뽑아내는 386세대나 현 정권에 대한 비판에 교묘하게 섞어놓은 친북, 좌파라는 딱지에 대해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다.

정책이나 개인적인 선호를 넘어서, 이념적으로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말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말싸움을 하다가도 상대방이 ‘말 잘하니까, 빨갱이’라는 말이 나오면 논쟁이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니만큼 누구라도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시비 걸 마음은 없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고 해도 상식 수준에서 허용되는 말들이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정도를 벗어나서 악의적인 수준으로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까지도 황폐하게 만든다.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의 시즌이 돌아왔지만 말의 성찬이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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