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L사장의 하소연

2006-10-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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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열(취재2부 차장)

며칠 전 취재 차 한국 농수산물을 수입해 판매하는 L사장과 만나 최근 한국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농산물의 미주시장 개척 노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대화 도중 기자가 한국 정부의 농산물 수출장려 정책이 미국에서 수입·판매하는 업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묻자, 대뜸 ‘실효성 없다’고 비판부터 했다.

L사장의 말은 이랬다. “최근들어 한국 농산물의 미국시장 판로구축을 위해 현지 수입판매 업체들에 대한 한국정부 지원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원 혜택은 몇몇 대형 업체에게만 국한돼 있을 뿐이더군요. 지원 신청을 냈다가 중소 수입판매상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L사장의 회사는 언론에도 자주 나올 정도로 꽤 이름이 알려진 업체다. 미 주류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력도 뛰어나 업계 평가도 좋은 편이다. 자체브랜드로 미 대형 유통업체에도 납품할 만큼 판로도 개척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부족할까봐 L사장은 지원 신청을 접수시킬 때 미 대형 유통업체와 체결한 공급계약 사실도 알렸단다. 그런데도 결국 한국정부 기관에서는 동일 지역에 몇 개의 업체가 선정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지원 불가 결정을 내렸다.

정부 기관의 입장도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예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신청이 접수된 모든 업체들을 선정해 지원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L사장은 ‘정부가 실적 위주의 정책’을 중요시하다보니 이 같은 상황을 낳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시 말해 정부 입장으로서는 짧은 시간 안에 더 큰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중소 수입 판매상보다는 대형 업체들을 밀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L사장이, 미국에서 한국농산물의 판로를 개척하는 업종 종사자로서 원하는 게 대체 뭐냐”고 물었다. 딱 하나란다. “미국 속에 우리 농산물을 심고자 한다면 제발 단기적인 성과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라는 것. 실질적인 마케팅을 벌이며 시장을 넓혀가는 업자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해달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괜히 숫자 놀음에만 빠져 있지 말고 진정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데 신경을 써달라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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