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울 비둘기

2006-10-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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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수필가)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이 많이 달라짐을 느낀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오래 사는 한인 역시 생활방식은 물론 생각하는 기준이 많이 달라져 있어 어쩌다 한국에 가면 엉뚱한 소리를 해서 당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올 3월에 한국을 가니 봄이라고 해도 겨울잠에서 깨어날 때라 산, 촌 구경을 하기에는 을씨년스러워 친구랑 가까운 고궁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런데 종묘 앞을 지나다가 나도 모르게 “어머나 저 비둘기떼들 좀 봐” 하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친구는 “웬 비둘기떼” 하며 사방을 둘러보니 비둘기는 커녕 노인 할아버지가 하나 가득 있자 친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는 나는 회색빛의 어수선한 날씨에 우중충한 잠바 차림의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얼굴을 맞대고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뉴욕 맨하탄 공원에 비둘기떼들로 잠시 상상했기 때문이다. 친구 말에 의하면 비좁은 아파트에 젊은 며느리에 손자들에게 눈치가 보여 저렇듯 바깥으로 나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옛날같지 않아 노인 혜택이 좋아져서 교통수단도 무료이고 게다가 홈리스는 아니지만 종교단체 또는 어떤 사회단체에서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 주어 이래저래 저렇게 모인다고 했다. 그 중에는 살기가 괜찮은 노인들도 외로워서 저렇게 바깥에서 산다고 했다.


얼마 전 교포신문에는 무슨 평화상으로 방글라데시 유누스 박사에게 수상을 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기사 내용인 즉, 방글라데시 그래민은행 총재를 맡고있는 유누스 박사가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라는 소액 무담보 대출 제도를 실시해서 빈민들을 구제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자세한 내막과 그들의 진정한 취지는 잘 모르지만 우선은 왜 한국 평화상이 아닌 어떤 지역 평화상으로 명칭을 정했을까! 그리고 한국 전역을 대상으로 봉사정신에 국민에게 기여를 한 모범 시민에게 그 상이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세상에는 노벨문학상, 세계평화상 등 여러가지 상들로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 볼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리는 아름다운 상도 많지만 내 나라 내 이웃에 얼마든지 모범이 되는 시민이 있고 아직도 개방할 문제가 많은데 왜 하필 외국인에게 그 상이 돌아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런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나라이다. 그래도 유누스 박사 같은 사람이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무담보 대출이라는 아이디어를 내어 빈민가들의 종자돈이 되어 닭이며 돼지를 키워 어려운 살림살이를 이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는 소식이 세계 방방곡곡에 알려지면서 너도 나도 무담보 실시로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에 비해 무담보 대출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크레딧카드로 사치를 부리며 남용하다가 카드 빚에 못 견뎌 몸까지 팔았다는 불미스러운 사건과 너무도 대조적인 이야기였다.

그렇듯 세상에는 노벨문학상, 평화상, 의학상 등 여러가지 상도 누군가 상을 받을 수 있게 나라에서 또는 어떤 공공단체에서 힘을 써 주는데 노벨문학상 같은 경우는 탁월한 인재가 우리나라에도 많지만 누군가 힘이 되어주지 않기에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가 세상에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음은 아쉬울 따름이다.그러는 일본에서는 “설국”이라는 장편소설이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졌고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된 것은 누군가 힘을 모아 세계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많은 인재들을 발굴해 마음놓고 연구하고 재주를 발휘할 수 있게 터전을 마련해주는 시설과 단체가 시급하며 나라 또한 노후 혜택 등 사회복지시설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가장 하위권에 있다는 소식으로 어찌 세계와 맞서는 문명국가로 내세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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