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걸 취하고 저걸 피하라

2006-09-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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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소(뉴저지 포트리)

뭐 좀 읽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노자의 도덕경(老子 道德經)을 몇 번인가 읽어보았다. 지금도 가끔 의문이 나면 다시 떠드러 보곤 한다. 전체 문장의 글자 수라야 5,000여자 밖에 안되는데 워낙 압축된 문장이라서 인지, 해득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역자의 해설을 참고 삼으니까, 어렴
풋이나마 터득할 수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3~4년 전인가, 서울에서 한바탕 거센 ‘노자 바람’이 일었던 적이 있다. 소설책도 아니고 깊은 철학이 담긴 고서(古書)를 둘러싸고 독서가의 거센 바람이 불다니, 분명 하나의 흥미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원인제공자는 도올 김용옥이었다. 평소 현학(衒學)을 자처하는 도올이 ‘노자와 21세기’를 써 놓고, KBS-TV 심야 프로에 나가 열강을 했던 모양이다. 그 이전에는 책을 통해서나 어렵게 읽었던 노자서를 TV 앞에 앉기만 하면 편안하게 책 쓴 저자가 나와 술술 강의를 들려주었으니 얼마나 관심이 컸겠는가.


그럴 즈음 사건 하나가 또 일어난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주부작가 이경숙이 나타나 ‘노자를 웃긴 사나이’ 1,2권을 잇따라 펴냈던 것이다. 책 내용이 하도 도올의 인격과 지식을 모독하는 표현으로 가득하며, 일반 독자들은 “아니, 이렇게 당찬 여장부가 있었어?” 할 정도로 독서의 흥미를 높였던 것.
제자리로 돌아와서, 도덕경의 짧은 문장 속에 똑 같은 단어 ‘거피취차(去彼取此)’란 말이 12장, 38장, 72장에서 되풀이 해 나오고 있다.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피하라”는 뜻인데, 무슨 의미가 대단해서 세번씩이나 반복해 썼을까. 말을 아끼는 노자이고 보면 분명 이유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피취차가 나오는 첫번째 12장 해당 구절을 옮겨놓고 한번 살펴보자. “오색명인목맹(五色令人目盲), 오음영인이농(五音令人耳聾), 오미영인구상(五味令人口爽)=다섯가지 색깔(즉 눈에 현란한 여러 색깔은 눈을 멀게 하고), 다섯가지 소리(즉 귀에 솔깃한 여러 소리)는 귀를 먹게 하며, 다섯가지 맛(혀에 반하는 입맛들)은 입을 밝게(즉 입맛을 버리게)한다”고. 이러한 연유로 성인(聖人)조차도 배를 위할 망정 눈을 위하지 않는다(爲腹 不爲目, 위복 불위목)고 했다. 그래놓고는 맺는 말이 거피취차(去彼取此)인 것이다.

배는 이처럼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가깝고 직접적이며 실제적이다. 그러나 눈은 바로 여기가 아닌 저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붉게 물드는 단풍 경치, 조각구름 떠도는 산봉우리, 쪽빛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뭔가 공허한 꿈이고 이상을 쫓아나섰다. 비현실적인데 가깝다.

이보다 앞서 3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虛其心(허기심, 마음은 비우고) 實其腹(실기복, 배 든든히 채우고) 弱其志(약기지, 의지는 약하게 갖고) 强其骨(강기골, 뼈대는 튼튼히 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노자서를 운운하는 이유는, 이민 와 사는 우리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떠나온 고국을 향한 관심이 지나쳐 보여서이다. 멀리 예를 들 것도 없이 ‘오피니언’ 페이지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지치지도 않고 한국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쩌다 한번 걱정되어 애정어린 조언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사사건건 참견을 하고 비판을 한다. 몇몇 사람은 주제도 모르면서 아예 평론가 연하고 쓴다. 한국에서 실컷 우려진 것을 무엇하러 이곳에서까지 재탕 3탕을 하는가. 누워 침뱉기 아닐까? 이러고도 과연 우리가 이민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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