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가을 단상

2006-09-30 (토)
크게 작게
김명욱(목회학박사)

9월도 마지막. 가을이 성큼 다가선다. 산록엔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하나 둘 낙엽이 떨어진다. 가을에 생각나는 것들. 풍성한 열매들. 추수가 다가와 황금물결을 이루는 들판의 모습. 비록 도심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가을은 풍요와 넉넉함을 가져다주는 계절임엔 틀림없다.
누가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했던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많은 사람들이 어느새 지난여름 더위를 잊어버리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더 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낀다. 그래서 망각은 좋은가보다.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연상하여 살다 보면 인생을 보다 더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가을이면 생각나는 것. 독서다. 책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가을엔 책 한 권쯤은 독파해야. 늘 책을 대하는 사람들이야 가을이 따로 없이 책과 더불어 살겠지. 그러나 이 가을엔 한 번쯤 고전을 접해보는 것도 괜찮을 게다. 추천해 주고 싶은 고전 중에서도 고전엔 성경과 불경이 있다. 성경을 기독교의 경전으로, 불경을 불교의 경전으로 읽지 말고 고전으로 읽어 보자. 그러면 한 결 더 읽기가 쉬워질게다. 한 번 태어나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 두 권의 고전을 접해 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하기야 책 한 권 읽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인생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2000년과 2500여년 동안 인류에게 진리의 등대로 여겨 읽혀져 온 두 권의 고전을 접해봄도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을은 남성의 계절. 바바리코트 깃 세우고 낙엽 밟으며 걸어가는 남성의 뒷모습. 무언가 쓸쓸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멋있다.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 버린 사랑’이 연출되는 가을. 어떤 지인은 가을에 이 노래만큼은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차중락이 이 노래를 부른 후 요절했다나.
남성들의 가슴이 헛헛해지는 가을. 이 가을엔 남성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그 누구의 마음과 손길이 필요하다. 누구는 누구. 아내이자 연인이다. 아내와 같이, 혹은 연인과 함께 낙엽 밟으며 걷는 가을 오솔길. 헛헛해 진 남성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아내’는 좀 아닌 것 같다는 어느 친구의 말. 그렇지 않다.

구관이 명관이라. 세파에 찌들려 잊혀져 간 옛 사랑을 아내로부터 다시 살려내어 함께 데이트 해 봄도 새로운 맛과 멋이 솟아 날 게다. 혼자 보다는 둘이.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낙엽을 거니는 멋을 상상해 보자. 인생이란 뭐 별다른 게 있나. 함께 늙어가는 옆 사람과 가을을 산책하며 지나온 날들을 되새기는 가운데 남은 생을 설계하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가을 단풍을 가장 만끽할 수 있는 방법. 등산이다. 뉴욕시에서 가장 가까운 등산코스는 베어마운틴. G.워싱턴 브리지에서 약 20분이면 도착한다. 팰리세이즈파크웨이 노스 출구 19번. 길게 잡아도 왕복 5시간 내. 주차료 6달러.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도시락을 산의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굽이진 산자락 단풍과 함께 먹는 그 맛은 상상만 해도 좋다.

등산이 힘든 사람이라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자동차 길을 이용, 자동차와 함께 할 수 도 있다. 등산이 가능한 사람은 등산 코스 트레일 화이트, 하얀 코스로 올라가 하얀 코스로 다시 내려올 수 있고 화이트로 올라가 레드, 빨간 코스로 내려올 수도 있다. 특히, 빨간 등산코스는 바위가 많은 코스지만 볼거리가 더 많아 단풍진 산허리를 뚫고 내려오는 맛도 일품이다.
베어 마운틴은 1400피트의 작은 산이지만 명산(名山)이다. 기가 좋다. 정상에 오르기도 어렵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다. 어린아이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나들이 등산 코스다. 지난여름 이 산을 오를 때 보았던 상반신 비키니 차림의 등산녀가 생각난다. 8월의 열기 속에 비키니를 입고 빨간 코스를 오르던 그녀의 싱싱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늘이 지나면 10월이다. 10월.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 또다시 열창되겠지. 10월 1일은 한국에서는 국군의 날인데 이곳 미국에서는 그냥 새 달의 첫 날이다. 10월 7일 토요일은 한인들의 축제인 ‘코리안 퍼레이드’가 뉴욕의 중심 맨하탄에서 열린다. 이 축제에 많은 동포들이 참가하여 한인들의 자긍심을 심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10월9일은 콜럼버스 데이로 공휴일이다. 가을을 가슴으로 맞아 새길 수 있는 10월의 단풍은 절경이다. 풍요로운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인 가을. 이 가을엔 ‘모두를 사랑하는’ 살찐 마음들이 되어보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