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法)

2006-10-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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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법에는 성문법과 불문법이 있는데 불문법으로서 지방사회의 질서가 유지되고 나라의 질서가 잘 지켜진다면 성문법이란 처음부터 필요가 없다.
윤리나 도덕, 믿음과 사랑, 존경과 사모, 나눔과 배려 등은 사람들이 원하면서도 성문법으로서 명문화 할 수는 없다. 불문법의 해당사항은 행위로 행사하기 이전에는 관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기 드물게 불문법을 성문법으로 규정하여 놓은 성경의 십계명, 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다. 법이란 지키는 것이지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들이고 땀흘려 사는 순한 사람들은 법이 무엇인지 조차 마음에 두지 않고 살지만, 힘 들이지 않고 살려는 사람이나 땀 흘리지 않고 축재를 하고 싶은 사람, 또한 능력 없이 권세나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교묘하게 법을 이용하거나 법을 어긴다. 예전에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란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그런 아름다운 말을 좀처럼 들을 수가 없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법을 지키는 사람은 바보라는 숨은 말일까?


법의 기원은 윤리에 있고 윤리의 기원은 질서에 있다. 사람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를 우선으로 하는 불문법도 법이다. 아니 성문법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형벌이나 벌금을 물린다면 사람들은 신경을 써서 잘 지킬 것이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나 배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형벌이나 벌금을 물린다면 싫어도 사랑을 할 것이고 이기주의자들도 배려를 염두에 두고 실천할 것이다. 성문법이란 형벌이 없는 약속이 아니라 형벌을 동반하는 준칙이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교묘한 방법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에 따르는 법도 더 많이, 그리고 더 세분화해서 제정된다. 법이 없으면 인간사회는 관리가 되지 않고 또한 법이 많은 나라일수록 그 사회는 관리하기가 복잡하다. 대신 불문법을 잘 지켜나가는 사회는 세상 어디를 가나 밝고 그런 사회를 만들면서 사는 사람들은 존경스럽다.
불문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교육자요,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요, 이웃에게 무심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요, 삶 앞에 다가오는 어려운 일에 겸손한 사람이다. 불문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성문법인들 자청해서 잘 지킬 것인가?

도덕과 윤리가 인간됨의 기본이라고 가르치는 공자의 말씀은 불문법이요, 살신성불이라는 인간 도리의 길을 가르치는 부처님이나 절대적으로 사랑을 행하라고 가르치는 예수의 말씀도 불문법이다.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아야 할 일, 지키고 싶지 않아도 지켜야 할 일, 또는 움켜쥐고 싶어도 잡지 말아야 할 일은 인위적인 의지로 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원성이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얕음이 있으면 높음이 있다. 부자가 있으면 빈자가 있고, 통치자가 있으면 백성도 있다. 받는 자가 있으면 주는 자가 있고 죽은 자가 있으면 산 자도 있다. 땅이 있으면 하늘이 있고 물이 있으면 불도 있다. 망하는 자가 있으면 흥하는 자도 있고 썰물이 있으면 밀물도 있다.

선택은 인위적이며 선택해서 가는 자는 그 선택의 모양을 이룬다. 인간이 하느님께 스스로 약속한 십의 일을 지키지 않은 기도가 하늘에 닿을 것인가? 살신하지 않는 부모의 얇은 희생 밑에서 자녀들이 제대로 자랄 것인가? 뼈대 없는 잔소리로 화평할 수 있을까? 서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있을 것인가? 지키지 않아도 당장은 형벌이 없는 불문법의 조항들이나 그 지키지 않은 형벌과 지켜낸 상은 먼 데 있고 우리는 그것을 향해서 지금도 계속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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