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테러와의 전쟁’ 성패 논쟁

2006-09-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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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일으킨 이라크전쟁 때문에 테러의 위협이 오히려 커졌다는 정보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테러와의 전쟁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행정부 내의 16개 정보기관이 이라크전의 영향을 분석하여 지난 4월 마련한 최종 보고서는 “이라크 공격으로 이슬람 과격파들이 표방하는 지하드에 대한 지지가 확산됐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또 테러단체에 동참하는 이슬람교도들이 늘어나면서 이라크전쟁 전보다 테러 위협이 증가했다고 결론지었다.

이같은 내용은 중간선거를 한달 남짓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이 부시행정부와 공화당을 공격하는 호재가 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불과 2주 전 9.11 테러 5주년을 맞아 이라크전쟁을 옹호하면서 이 전쟁으로 테러 위협을 줄였다고 말했다. 문제의 정보 보고서가 파문을 일으키자 부시대통령
은 또다시 “미국민을 해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 우리를 덜 안전하게 했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면서 이라크전을 옹호했다.


9.11 테러로 인해 시작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5년이 지난 지금 테러 위협이 줄었는가 또는 늘었는가는 대테러전쟁의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테러 위협이 줄었다면 부시대통령이 잘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테러 위협이 늘었다면 부시대통령이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대통령은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게 떳떳치 못한 승리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9.11 테러가 터지면서 대테러전의 선봉장으로 나섬으로써 한때 지지도를 90%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지난번 재선 때도 테러와의 전쟁을 주무기로 캐리 후보를 물리쳤다. 부시에게서 테러와의 전쟁을 빼버리면 남을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대략 세 가지 전략이 병행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테러에 대한 철저한 응징으로 테러범과 배후 조종자, 배후세력을 철저히 색출하여 뿌리뽑아야 하며, 둘째는 테러 방지 조치의 강화로 테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테러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제도, 조직, 시설의 보완과 경계조치를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대테러전에 대한 국제 공조 강화로 세계 각국이 테러 방지와 응징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장치를 마련하여 가동해야만 테러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첫번째 조치는 신속하게 실행했다. 9.11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숨겨준 아프가니스탄의 텔레반 정부를 붕괴시켰다. 그러나 빈 라덴은 잡지 못한 채 대테러전의 방향을 이라크로 돌려버렸다. 이라크가 장차 테러의 배후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선제공격 차원에서 전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쟁으로 인해 미국의 발목이 잡히게 된다면 그런 전쟁은 피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미국 내에서 테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국토안보부가 신설되어 테러정보를 종합하고 테러 방지 조치를 관장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내에서 몇 번의 테러위험 경보가 발령됐고 몇 건의 테러 음모가 사전에 적발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공항과 항만, 테러 취약시설은 아직도 테러범들에게 무방비 상태이다. 테러 조직이 대대적인 미국내 테러를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테러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 테러 방지책이 완벽해서 테러가 재발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국제 공조는 거의 실패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9.11 테러 직후 세계는 한 목소리로 테러를 규탄했다. 언제나 미국에 동조하기를 꺼리는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테러를 규탄하고 미국의 응징조치에 동의했다. 그런데 대테러전 과정에서 미국의 독주에 가까운 미국중심주의로 인해 대테러전의 초점이 흐려지고 말았다. 반테러에 대한 세계의 공감대가 강력히 형성되었던 당시 미국이 각국을 설득하여 세계의 테러에 대한 집단방위체제와 같은 조약과 기구를 만들 수 있었다면 테러는 지구상에서 발붙일 곳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을 것이다.

이라크전쟁이 테러 위협을 증가시켰는가 또는 감소시켰는가는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겠지만 미군을 상대로 한 이라크의 자살 테러가 테러범의 양산 기지가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막는다는 말처럼 테러를 없애기 위해서는 테러범들을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는 얼마 남지 않은 중간선거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시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신임으로 지난번 선거에서 부시의 재선은 물론 상하 양원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에 밀린다면 이는 대테러전의 실패라는 판정일 것이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그 결과에 따라 재론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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