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잊지 말자! 9.28 서울 수복을

2006-09-28 (목)
크게 작게
김춘근(미동부 해병대전우회 6대 이사장)

흔히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면 ‘내 보따리 달란다’는 말이 있다. 6.25 한국동란 또는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이란 언어도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나 쓰고 있는 낱말이 되어버린 오늘이다.

이곳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라도 1950년 9월 15일과 9월 28일은 잊지 말아야 한다.미 합참이 인천상륙작전을 5,000분의 1의 도박으로 간주하고, 그 반대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본인은 5,000분의 불가 보다 1의 가능성을 기필코 결행하여 작전을 성공시키겠다는 결의에 의해 얻어낸 작전명이다. 일명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고 이름 붙여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날이다.


낙동강 전선에서 대한민국의 운명이 공산화 될 수 있는 최후의 순간에 한·미 해병대가 맥아더 원수의 지휘 하에 감행되어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대한민국 해병대만의 기념일이 아니다.56년 9월 15일 아침 8시에상륙 성공의 제 1보가 날아들자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민을 대신해 감사했으며 처칠은 “시간을 벌어 반격하는 전략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찬양해 마지 않았던 그 날이다.

인천시청 탈환시는 한·미 해병대가 인천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인천 시민들이 대한민국 해병대를 보고 석달간 받았던 고통과 설움이 복받쳐서 소리내어 울거나, 살아남은 기쁨에 “대한민국 만세, 해병대 만세”를 부르며 우리 해병대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는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을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기억하고 있겠는가? 한·미 해병대는 56년간 매년 그 날을 기념하고 그 작전에서 산화한 영령들에게 명복을 빌어주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곧 서울 수복을 앞당겼다. 9월 28일, 중앙청에 태극기가 펄럭이기 시작하고 대한민국 해병대 제 6중대 박정모 소대의 수훈을, 서울의 해맑은 가을하늘에 교회 종소리와 함께 만세 소리가 울려퍼질 때 서울시민들에게는 공산 마수에서 89일간 시달린 고통을 잊게 해준 태극기였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 한미 해병대의 승리의 덕분으로 다음날 중앙청에서 거행된 역사적인 환도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여 그 전공을 치하했던 것인데 본국에서 지금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이 작전으로 아군 10만명의 손실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곡창지대인 남한지역을 10월 이전에 수복하여 가을 추수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전쟁 중 안정적인 식량 확보와 전국민의 기아에 허덕일 민생고 해결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당시 백척간두에 서 있던 대한민국의 절박함은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주재 본국 대사에게 보냈던 수 백통의 전보와 주한 미국대사를 경무대로 불러 나눴던 수십 건의 대화기록 속에 미국 인사들이, 미국을 어르고 달래며 미국 인사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사기꾼’이라는 모욕적인 표현을 감수하면서도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일념으로 참아냈다는 기록이 그 절박함이 56년이 지난 지금에서 그저 있는 오늘로 착각하는 것 같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우물 안에서 구국의 은인들을 평가하는 자들의 행태에 분노마저 느끼는 오늘이다.그냥 와서 사는 미국이 아니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쌓인 한국군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 얻어낸 것이 한·미 방위조약인 것을. 한국전과 월남전에서 쌓아진 한미 동맹간의 혈맹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 땅에 와서 사는 것이다.
본국에서 거론되는 작통권 환수 문제로 한미 동맹에 틈이 생기면 결국 이 땅에 살고있는 한국인은 은혜도 모르는 민족으로 질시받을까 두려울 뿐이다.전쟁이란 1에 1%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56년 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신 한미 해병대, 선배 영령들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