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모래알 같은 한인들

2006-09-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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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일반적으로 민족을 표현할 때 중국인들은 ‘진흙’같다고 하고 한국인들은 ‘모래알’ 같다고 말한다. 이는 중국 사람들은 모이면 모일수록 단결하고 한국인들은 저마다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민족성 때문인지 중국인들이 모이고 있는 곳은 나날이 발전하고
한국민족이 모인 곳은 뭐 좀 될라치면 너 잘났다, 나 잘났다 싸움하는 일이 잦다.

뉴욕의 한인사회는 이제 어느덧 성년이 되어 모든 면에서 어느 민족 못지않게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단체 수도 각종 명목으로 약 500개가 되고 있고, 한국 이민자들의 구심점 역할까지 했던 교회수도 약 600개에 이른다. 추세로 보면 머지않아 메트로폴리탄 일대의 한인단체나 교회 수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찌 보면 한인사회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는 분석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한인들의 이 모래알 같은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이 점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인사회의 가장 핵이 되는 교회들 중에서도 잡음이 일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있다. 교회도 처음에는 영차 영차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았다가도 뭐 좀 될 성 싶으면 분쟁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교회 경우 장로다, 권사다 하는 임직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너 안된다, 나 된다 다투느라 시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면 또 마음에 안 드는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옮겨간다.

아니면 목사파와 장로파가 둘로 갈라져 밀린 편에서 또 나가 교회를 새로 개척한다. 사랑과 화평을 모토로 하는 교회가 이럴진대 하물며 단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회장 하나만 뽑더라도 올바로 하나 단결해서 순조롭게 해나가는 것을 보기 어렵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남의 꼴은 못보고 무엇이든 나 위주로 하겠다는 이기적인 심사가 아니고 무엇인
가.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타민족 보기가 부끄럽다. 오죽해서 중국인 사회에서 “무조건 집이나 건물사라, 그러면 한국인들이 모기지 내주고 렌트비 내 준다”는 말까지 나올까. 그래서 요즘 중국인들은 몇 십 명씩, 몇 백 명씩 힘을 모아 집이나 건물 등을 사려고 혈안이다.

이 말은 결국 한인들은 모래알같이 단결 못하는 민족이니 저희들끼리 서로 으르렁 거리고 싸울 때 우리는 단결해서 부지런히 집 사고 건물사서 어서 빨리 커나가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모래알과 진흙의 차이는 이처럼 현저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
고 있다. 최근 시끄러운 플러싱 한인회 회장 선거 분규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 와서 무엇 때문에 모래알 같은 민족성을 꼭 내비치어야 한단 말인가. 단체란 무엇이고, 또 회장직이란 무엇인가. 단체는 명예와 부와 권세의 척도가 아닌, 오로지 지역사회의 대표기구다. 이 기구의 회장은 단지 지역 내 커뮤니티와 그 지역에 사는 한인들의 손과 발이 되고 눈과 귀가 되는 하나의 심부름꾼이다. 그러면 서로 오손 도손 친목해서 밀어주고 뽑아주고 하면서 잘 해나가면 될 것 아닌가.

플러싱에는 상인들을 포함, 5만여명이나 되는 한인들이 살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초기 한인이민자들이 많이 와서 정착하고 있다. 때문에 플러싱 한인회가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플러싱 한인회는 어떻게든 이들을 하나로 묶고 점점 커가는 이 지역의 중국인들과 인도계들을 따돌리고 커뮤니티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고 권익을 도모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니
고 있다.

그렇지 않고 이와 관계된 사람들이 모래알처럼 지내다간 타민족에 우리의 터전도 빼앗기고 상권도 제대로 지켜나가기가 어렵다. 이것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기본원리를 외면하고 계속 모래알처럼 살아간다면 한인정치인 한명 배출도 어쩌면 요원한 일일런지 모른다. 그러고도 우리가 성공한 이민자라고 할 수 있을까? 회장 하나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고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한인사회 ‘단체’하면 많은 사람들이 식상해하며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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