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

2006-09-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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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수(커뮤니티센터 명예 영구 이사)

지구촌에는 700만명이나 되는 우리 한국인들이 조국을 떠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고, 뉴욕만 해도 40여만명의 동포가 살고 있다. 조국이 어려웠던 시절,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조상들이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이주해 온 이래 우리의 이민역사는 100년이 넘었다.이역만리 타국땅의 수많은 타민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인들은 서로 도닥거리며 그런대로 잘들 살아왔다.

소수민족 중에 잘 사는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는다.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 소유주의 30~40%, 세계 백만장자의 20%, 맨하탄의 빌딩 소유주의 50% 이상이 그들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제를 주름잡는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러한 부를 이룩한 데는 그 민족의 우수성으로 설명할 수도 있으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우수성으로 말하면 우리 민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이 잘 살게 된 이유를 다른데서 찾아보자.


2차대전 중 나치에 의해 핍박받던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고난과 설움을 딛고 한데 뭉치고 지혜를 모으는데 온 힘을 쏟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회당을 만들어 그곳을 구심점으로 모이고 또 모였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부를 구축하고 자녀를 교육시키며 주류사회로 뛰어들어 마침내 미국을 쥐고 흔드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내 유대인 비율이 2% 밖에 되지 않는 그들이지만 이제 미국의 단단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한 그들은 이제 이미 커뮤니티 센터 시대를 지나 더 이상 커뮤니티 센터가 필요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뉴욕의 우리 한인들은 어떤가? 아직 그들과 같은 변변한 커뮤니티 센터 하나 없다. 중국도, 인도도, 베트남도 모두들 뉴욕 도성에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똘똘 뭉쳐 있다. 비록 그 옛날에 유대인들이 모이던 시절과 달리 커뮤니티 센터의 의미가 달라졌을진 모르더라도 우리가 서로 애환을 같이 하는 사랑방 하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필자는 1961년 서울신문사 특파원으로 배를 타고 LA로 향하던 중 5.16혁명을 만났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늘 한인들이 똘똘 뭉쳐 더 잘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1962~63년에 동지회(이승만 건국대통령을 기리는 모임)와 국민회(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모임)를 설득, 반목하지 말고 단합하라고 호소, 5만달러를 거두어 커뮤니티 센터를 건립한 바 있다.

3년 전에는 우연히 뜻을 같이 한 최영태씨와 배희남씨를 만나게 되어 뉴욕 한인 커뮤니티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을 시작한지 3년만에 건물을 구입하게 되었다. 이는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한인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더구나 한인 사랑을 실천하는 한국일보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 일의 박차를 가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기초를 마련한 커뮤니티 센터는 한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더욱 성장해 가기를 바란다. 동시에 우리는 본 센터를 모든 한인들이 꼭 필요로 하는 기관으로 만들 것을 다짐해 보기도 한다.

나는 이제 70 고개를 넘어 인생을 되돌아 보며 안주할 나이이고, 아내도 깊은 병중에 있어 그를 돌보아야 한다. 그런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 이 일에 뛰어들었겠는가? 그러나 나의 신념은 바꿀 수 없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일을 위해 신명을 다할 것이다. 성공한 회계사로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영태씨와 부동산으로 상당한 재력가로 자리매김을 한 배희남씨도 거액을 뉴욕한인 커뮤니티센터를 위하여 쾌척하면서까지 구태여 이 험난한 길을 택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유야 어떠하든 필자가 보기엔 그들은 성공한 한국인이기에 한인들을 챙기는데 앞장 설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우리 한인들이 더욱 당당한 한국인으로서 이 땅에서 든든한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반세기 가까이 애환을 같이 한 한인들이, 파란 눈의 내 며느리가 생산한 손녀 영윤과 손자 영수가 이 땅에서 영원한 한국인으로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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