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2006-09-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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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벌써 9월 중순, 이제 초록의 신록은 불꽃같이 타오르는 낙엽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수채화 물감을 쏟아부은 듯한 낙엽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창 밖에는 꼬리가 탐스러운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입에 물고 재빠르게 나무 위로 기어오르며 달아난다. 아마도 겨울 식량을 저장해 두
려는 바쁜 월동준비인 것 같다.

우리 집 부엌의 문은 뒷마당의 채소밭으로 연결된다. 여름동안 채소밭에서 아침이슬이 묻은 오이, 호박, 열무, 쑥갓, 상추, 고추, 깻잎 등 채소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 온다. 싱싱한 채소는 밭에서 식탁으로 옮겨진다.
여름이 끝나고 채소밭에 고추도 빨갛게 물들어가는 수확의 계절이다. 대자연이 연출하는 계절의 변화는 가슴을 적시는 대서사시를 읽는 것 같다. 그래서 잠시 지난날의 짙은 향수에 몽롱하게 취해 본다.
세상을 한 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여자들을 바라보면서 나의 천방지축이었던 지난날을 재 편집해 본다.


도널드 트럼프가 진행하는 NBC ‘어페런티스(apprentice)’의 확장 버전에 출연하여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마사 스튜어트는 그녀의 창의력과 재능으로 미국인 주부들의 살림을 환상적으로 꾸미고 있다. 그녀는 대학시절 모델로 활동하면서 미디어에서 마케팅을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텔레비전 시리즈의 호스트로 발탁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음이 새어 나오지만 대학시절 나에게도 우연히 천우신조의 기회가 찾아왔다. 어느 격조 높은 깨끗한 이미지의 여성잡지 표지 모델로 발탁이 되었다. 나는 오색 구름다리를 밟고 다니는 듯 들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다. “살기 싫으면 굶어 죽어야지, 얼굴을 상품화하는 직업은 시장에 상품가치가 없어지면 소모품처럼 버려진다”아버지의 차가운 논리와 설득력으로 나의 의지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 후 나의 환상이 깨어지고 맥이 빠진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인문과에서 의과대학으로 급전환을 하였다.기업의 여왕인 마사 스튜어트의 삶도 순탄하지 않다. 작년 봄, 2005년 3월 4일 리빙 옴니미디어(Martha Living Omni Media)의 창업자인 그녀가 앨더슨(Alderson west VA) 형무소에서 증권사기죄와 사법 방해 혐의로 5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옥하는 날이었다.그녀가 출옥하여 비행장에 도착하여 헬리콥터에 탑승하기까지 케이블 뉴스 채널은 생방송으로 긴급뉴스로 집중 보도를 홍수처럼 쏟아 부었다.
마치 온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한 듯이 들끓었다.60대 중반의 나이인 그녀는 단발의 생머리와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으로 개인 전용기에 오르기 전 짤막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5개월의 수감생활은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나는 감옥에서 함께 지낸 동료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또 배웠다”그녀의 감옥생활은 흠집을 남기기는 커녕 오히려 위기를 넘긴 후 더 높이 비약하는 전환기가 되었다. 그러나 편집증에 가까운 그녀의 사업에 대한 열정은 이혼을 하고 외동딸과도 갈등이 많다. 많은 것을 얻는 대신 잃는 것도 있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결정하기에 달려 여자의 팔자도 달라지지 않을까? 내가 그 때, 지난날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아버지에게 모델이 되겠다고 생떼를 쓸까?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불꽃 속을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날아다니던 젊음이 짙은 향수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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