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습관적인 패배

2006-09-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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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부장대우)

한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 대학 풋볼계와 스포츠팬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로 통하는 조 패터노(현 펜스테이트 대학 풋볼팀 감독)는 팀의 성공을 위해 선수들의 자신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최상의 자신감 없이 경기에 임하면 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경기에서 지다 보면 패배는 결국 습관이 돼 버린다.”요즘 남자 프로 골프 투어(PGA) 경기에 참가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미셸 위양을 보며 패터노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불과 지난해 이맘때쯤만 하더라도 ‘제2의 타이거 우즈’가 될 것이라며 위양을 극찬했던 미 주류 언론들은 아직까지 여자 대회에서 조차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16세 소녀가 왜 계속 남자 무대에 도전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제는 지겹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인간사회의 ‘정’이라는 철학이 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한국에서는 약자를 응원하는 풍조가 만연하지만 세계 최고 강대국인 미국은 승자를 좋아한다. 그런 미국이 요즘 승자에 목말라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도 승전보가 울리지 않고 있고 스포츠 역시 야구(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와 농구(세계 남자 선수권대회 준결승 패배), 축구(월드컵 16강 진출 실패), 테니스(데이비스컵 준결승 패배), 골프(라이더컵 패배) 등에서 잇달아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승자’라는 단어가 항상 붙는 무하마드 알리,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같은 새로운 스포츠 영웅을 미 사회는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미셸 위는 닭장에 가서 암탉을 놓친 귀여운 꼬마처럼 웃을까 울까 망설이고 있는 모습이다.

꿈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있어 단계와 절차는 있는 것이 삶의 이치가 아닐까싶다. 올해 겨우 16세된 ‘인터넷과 I-Pod 세대’ 소녀에게 삶의 이치를 훈계하는 것이 너무 상투적일 수도 있겠지만 앞날이 창창한 코리안-아메리칸 소녀에게 패배가 습관이 될까봐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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