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어머니, 사랑해요

2006-05-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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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어느 누구도 어머니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어머니 탯줄을 끊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혈육의 관계는 끝이 없는 시작으로 이어진다. 자식이 늙어서도 ‘길을 건널 때 조심하라’고 할 만큼 어머니는 자식을 마음에 두고 한시도 떠나지를 못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의 나이를 셀 줄 알지만 자식들은 어머니의 나이를 셀 줄 모른다. 아니 아주 잊어버리고 사는 자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식이 어머니의 나이를 알았을 때는 이미 어머니는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가 죽고 나서 울고 불고
후회하는 자식들이 많이 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크기는 손바닥만하다. 그러나 그 손바닥만한 데에 있는 작은 눈의 크기는 하늘보다 더 크다. 또 바라보는 눈 밑에 감춰진 사랑은 하늘보다도 더 높다.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은 하늘의 색깔이 불변하듯 50년이고, 100년이고 변하지 않는다. 그런 변함없
는 빛 아래서 우리는 성장해오고 그런 빛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슬프고 불행한 삶을 사는 셈이다. 이 세상의 가치를 따지자면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것이 ‘어머니’라고 하는 그 자체이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어머니’란 존재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니날, 올해도 또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반복되는 이 어머니날을 우리가 또 습관적으로 하나의 형식적인 경축일로만 보낼 것인가. 우리는 사실 어머니가 우리를 키울 때 목석인줄 알았다. 어머니는 배고픈 줄도 모르는 사람인가 싶었다. 밥상 앞에서도 어머니는 구석에 앉아 생선 대가리나 발라먹고 그래서 어머니는 생선살을 먹는 줄도 몰랐다. 밥이 모자라면 어머니는 늘 밥솥 제일 밑에 누룽지 같은 것을 물에 말아서 배를 채웠다. 어머니는 춥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사는 줄 알았다. 엄동설한에 길을 가다가도 아이가 춥다고 할 것 같으면 입던 옷도 벗어서 입혀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추운 겨울날씨에도 아무렇지 않게 당당하게 걸어갔다.

어머니는 방안에서도 따스한 아랫목에 눕지를 않았다. 아이들을 아랫목에 누이고 한기만 넘치는 윗목에서 자기 때문에 우리는 어머니가 추운 줄도 모르는 여자인줄 알았다. 어머니는 입맛이 없는 사람인줄 알았다. 맛있는 건 자식들한테 다 주고 자신은 제일 맛이 없는 것만 골라 먹었다.
이걸 보고 우리는 ‘아, 우리 어머니는 맛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모든 자식들은 어머니가 베푸는 사랑에 대해서 무심했다. 아니 어쩌면 무심보다 더한 외면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무리 ‘어머니에게 맛있는 것 좀 사다 드려야지’ 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치아가 다 빠진 나이가 되었다. 또 ‘어머니한테 옷 한 벌 사다 드려야지’ 했을 때에는 어머니는 너무나 말라서 맞는 옷이 없는 나이가 돼 버렸다.

우리가 과연 해마다 돌아오는 어머니날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매해 돌아오는 어머니날이라고 하는 것은 형식적인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깨우치고 어머니가 베푸는 사랑에 대하여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다짐하도록 하는 날이다. 자식이 자기가 쓰는 용돈은 아까운 줄 모르고 쓰지만 거기에서 십분의 일 만이라도 어머니한테 쓴다고 할 것 같으면 어머니는 자식이 주는 십분의 일을 가지고 1만배의 기쁨을 느낄 것이다.

어머니라고 하는 존재는 자식들로부터 무엇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마치 아무런 기대 없이 길을 가다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런 기쁨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자식이 십분의 일 이라도 정성을 생각해주는 그런 것이 어머니에게 왔을 때에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왔기 때문에 오히려 천배, 만배의 기쁨을 누린다. 우리는 더 이상 어머니라고 하는 그 이름에 대해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공짜인 줄 알지만 생각해 보면 모두가 빚이다. 평생 동안 크레딧 빚 갚듯 갚아도 모자라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은혜이다.
“고마우신 어머니, 정말로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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