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월드컵의 추억

2006-05-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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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취재2부 차장)

왕년에 축구공 한번 안차본 한국 남자는 없다. 군대에서의 경험담까지 곁들이면 여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가 된다.
그런데 축구를 가장 좋아한다는 주위 사람은 별로 없다. (뉴욕의 축구단 선수들이 들으면 서운해하겠지만) 어릴 적 축구 경기를 본 적은 있지만 대부분 국가 대항전 경기여서, 경기 내용보다는 승부에 집중했던 것 같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 듣고 배운 것이 묘하다. ‘동네 축구’라던가, ‘문전처리 미숙’, ‘x볼’, 심지어 ‘한국 축구는 역시 안돼’라는 비하하는 얘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연히 축구 대신 농구와 야구에 빠져들었고, 미국에 온 뒤 축구는 관심사에서 더더욱 벗어나 있었다.2002년 월드컵 직전까지도 ‘혹시나’와 ‘행여나’가 혼재했다. 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의 6월은 행복했다. 한국 뿐아니라 뉴욕에서도 그랬다.

‘한국은 강팀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월드컵 4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끼리 스스로를 낮췄던 열등의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4년이 지나고 어김없이 월드컵 시즌이 다가왔다. 2002년과 다른 점은 우리가 이길 것을 예상치못해 우왕좌왕 정신적 혼란(?)을 겪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차분하게 승리의 축배를 들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응원전도 미리 준비하고, 심지어 16강에 못올라가도 된다는 여유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꼭 16강에 오르지 못해도 열심히, 수준있는 경기만 보여준다면 만족할 것 같다.

그런데 월드컵 붐이 일고,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서인지, 이젠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한국에서도 응원전을 둘러싸고, 기업간에 서로 헐뜯는 추태가 있었다. 월드컵 응원가가 홍수를 이루는가 하면, 모르면 간첩이라는 식으로 꼭지점 댄스를 강요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뉴욕 한인사회에서 뉴욕대한체육회와 뉴욕한인축구협회가 가장 먼저 단체 응원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음에도 일부 단체가 뒤늦게 뛰어들어 한인들의 단합을 깨고 분위기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월드컵 마케팅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축구와 월드컵에 대한 좋은 추억을 깨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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