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효도

2006-05-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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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륭웅(공학박사)

내가 아는 70대의 할머니가 계시다. 오랫동안 중병으로 고생하고 계신다. 아드님을 잃고 하루도 살고 싶지 않으신데도 하느님을 의지하며 사신다.
오랫만에 전화를 하셨다. 눈길에 미끄러져 다쳤는데 꼼짝없이 혼자 누워 계시단다. X-레이라도 찍어야겠다고 하면서 그간 교회의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단다.내가 “어머님, 자식들은 다 어디 갔어요” 했더니 자식 하나는 새로 가게를 차려 올 수가 없고, 누구는 무슨 일 때문에 못 오고... 하신다.나는 부아가 치밀어 “아니 부모가 중요해요, 돈 버는게 중요해요” 했더니 할머니가 “내가 옛날에 무어라도 가지고 있을걸...”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신다.짐작으론 자식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니까 이제 홀대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2년 동안 혼자 사신단다. 전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셨는데 하도 강아지가 귀여워 쓰다듬어 주었더니 나보고 가져가라 하셨다. 외롭게, 혼자서 강아지를 벗삼아 사시면서도 내게 주시겠다고 하신 분이시다.
나는 어머님 임종을 못해 드려 평생 한이 된 사람이다. 나와 같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돈은 다시 벌면 되고 공부는 늦어도 할 수 있고, 잃었던 건강도 명예도 다 찾을 수 있지만 부모님께 효도 못하고 떠나보내고 나면 참으로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땅을 치고 통곡해도, 매일 울어도, 자신을 쥐어뜯어도 도대체, 도대체 어찌해 볼 수가 없다.우리의 인생살이에서 이 보다도 더 가슴아픈 일도 평생을 두고 두고 후회하는 일도 없다.


나는 너무도 괴로워 할머님 한 분을 꽤 오랫동안 모셨다. 얘기도 해 드리고 안마도 해 드리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그래봤자 한 두 어 조각 드시는 게 다였지만 ‘어머님’과 사는 재미가 꽤 좋았다.
오래 모실려고 했는데 그러질 못하고 친자식에게 보내드려야만 했다. 떠나시면서 “가기 싫은데, 가기 싫은데” 하시는 말씀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백범일지에 보면 선생님의 선친께서 임종을 맞으실 때에 <산촌 가난한 집에서 고명한 의사를 부른다거나 기사회생의 명약을 복용하기는 형편상 안되는 일로 우리 할머님의 임종시에 아버님이 단지를 하신 것도 이런 절경에 처한 때문에 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또 단지를 할 것 같으면 어머님의 마음이 상하실 터이니 나는 할고(割股)를 하리라 하고 어머님이 안 계신 때를 틈타 왼쪽 허벅지에서 고깃점 한 점을 떼내었다. 그래서 고기를 불에 구워 잡수시게 하고 흐르는 피를 입안에 넣어뜨렸다. 분량이 적은 듯하여 다시 칼을 들어 그보다 더 크게 떼려고 했다.

그래서 먼저보다 천백배의 용기를 내어 살을 베었지만 살점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고통만 심한지라 두번째는 다리살을 베어 썰어놓기만 했을 뿐 손톱 만큼도 떼어내지 못했다. 나는 혼자서 탄식했다. “단지나 할고는 진정한 효자가 하는 것이지 나와 같은 불효로 어찌 효자가 되랴”>내가 선생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사표인 선생의 그 말씀하신 바를 글자 하나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상 민족을 구한 모든 인물들이 만고의 효자였다. 이순신도, 안중근도, 백범도.
나는 젊은(?)나이에 주례를 설 때마다 으뜸되는 주제가 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세요” 하는 것인데 부모에게 효도하는 가정 치고 성공하지 못한 가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부모에 대한 효도를 ‘마음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께서 무슨 호의호식을 바라겠는가. 자식이 호의호식하면 혹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성공한’ 자식보다는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사는 자식을 더 바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부모님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자식 때문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 하는 것을 보며 자란다고 믿는다. 효도하는 사람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우리 모두는 부모에게 너무 무심한 게 아닌지, 아픔이 무엇이고 무엇이 불편한지 한번쯤 생각이라도 하는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우리 모두는 사람답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 가운데 하나로 잡고 있다. 사람답게 사는 그 가운데에 효도가 있다고 본다.
한자의 효(孝)자도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형상으로 지은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주자는 인간의 열가지 후회 중 으뜸으로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 못한 것”을 꼽고 있다. 그래서 효는 인간의 백행지본(百行之本)이다. 인간 행동의 근본은 효도에 있다는 말씀이다.주위에서 사랑하는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로 인해 마음 상하는 일을 좀 안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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