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운전기사님

2006-05-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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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행(의사,수필가)

옛날, 그러니까 1950~60년대에는 서울이나 기타 도시에서 자가용이 있었던 집안이면 재벌급에 속했다고나 할까, 아무튼 잘 살고 여유가 있었던 가정이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자가용(차)이 있으면 물론 운전기사님이 따르게 되었으니 식구가 최소한 둘은 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엔 운전기사라는 정중하고 공손한 ‘말’은 안 썼고 대신 그냥 ‘운전수’라고 불렀고 성과 이름을 포함해서 호출하는 경우도 드물었다고 본다.그러니 이 당시의 있는 층, 아니면 부유층의 언어 횡포가 대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 후로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아마도 1980년대쯤일까? 서울에 들릴 기회가 있어 가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운전기사’를 운전수라고 부르면 큰 망신을 당한다는 것이었다.아주 당연한 호칭이었다고 반가와 했으며 경제발전이 차츰 직업 명칭의 귀천을 없애고 모든 직업이 평등하고 또한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데 아주 좋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제 미국땅에 와서 운전기사가 되어온지도 거의 40년, 그것도 단순한 운전기사가 된 것이 아니고 때로는 간단한 정비사까지 겸하면서 크고 작은 사고 및 고장도 있었지만 남의 육체에는 손상 없이 지금껏 주로 뉴욕시를 비롯해서 미 동부지역을 쏘다닌 자신의 경력이 그저 자랑할만한 것은 아닌 이유는 이 나라에서 자신의 운전기사가 안되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친지들을 위한 운전기사의 역할도 보다 더 뜻있고 중대한 일이지만 우리 모두가 해야하는 일이기에 자화자찬을 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다.


미국에 있는 큰 도시면 다 그러하려니 생각하면서 뉴욕시의 교통지옥(트래픽)은 서울시, 기타 한국의 큰 도시, 모스코바, 마닐라 등등의 교통지옥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면서 나이가 들수록 참을성이 많아진다는 어느 누구의 말과는 달리 교통체증만은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이 나만의 고충만은 아니길 바란다.
이렇게 되면서 과거 2~3년 전부터 버스와 지하철을 더 많이 이용할 기회가 있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듬직하게 보이는 운전기사 50여명의 직장인들이 이 기사의 능숙한 운전기술에 목숨을 맡겨놓고 눈을 감고 명상을 하거나 못다 즐긴 아침 잠을 즐기는 버스 안의 정경에서 이 사람들이야말로 낭비와 편리함의 벽을 넘어서 열심히 살아가는 미국땅의 애국자가 아닌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마침 이라크 전쟁 및 내분, 그리고 이란의 핵물질, 핵무기 문제로 유가 상승이 기록을 세우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개스값이 올라가고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는 현실속에서 연중 무휴 열심히 일하는 버스, 지하철, 기차 등의 공공교통수단 기사들의 노고를 더욱 칭송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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