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열리는 ‘실크 로드’

2006-04-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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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자(의사)

지난해 북경에 다녀왔다. 북경의 공항은 10월 중순인데도 비좁고 후덥지근하였다. 비능률적인
입국 절차로 긴 줄에 서서 오랜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아직도 사회주의 낙후된 모습
과 타성이 남아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들어 오고 있는 미국인. 유럽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동남아 아세아인들로
공항을 가득히 메웠다.
검은 양복에 중절모에 수염을 기른 근엄한 모습의 유태인. 머리에 터번(turban)을 둘둘 감은 인
도인. 두건을 쓰고 전통 이슬람 의상을 입은 이슬람인들, 금발에 투명하고 푸른 눈의 키가 크고 잘 생긴 앵글로색슨의 백인들, 모든 지구촌 사람들을 모아놓은 인종시장이다. 신흥 석유 산유국
으로 떠오르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남자는 원시림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듯이 거구를 흔들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순박한 웃음을 짓는다.

세계 경제 중심의 무대를 만들어 모든 세계인들을 끌어드리는 중국의 강한 흡인력은 무엇일까? 고대 중국이 실크로드는 고대 동서 문명을 연결해 주던 대륙횡단로로서 동서양의 무역과 문화의 만남의 길이었던 비단길(silk road)이 다시 중국의 큰 대문으로 열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등소평은 흑묘백묘론 을 통해 생산력 우선주의를 내보이며 개방과 중국 경제개혁 점화를 일으켰다. 반세기 동안 닫혔던 중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사회주의와 중국 경제개혁을 접목시킨 등소평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직도 천안문 광장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설자인 모택동의 초상화가 높이 걸려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젊은이들은 우상 같은 국부인 거대한 빙산의 얼음을 깨고 변신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광장을 파도와 같이 물결치던 학생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며 기관총난사에 의한 무력 진압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같이 끝없이 넒은 천안문 광장에 그들이 흘린 피를 말끔히 씻어냈다.


고층 빌딩 숲을 이룬 북경의 거리는 자동차와 자전거를 탄 인파들이 넘쳐흐른다. 인력거도 달린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달린다. 1950 년대의 과거에 멈추어 있는 후진성과 눈부시게 발전한 현재가 공존한다.마침내 지난 4월 19일 중국의 새 얼굴인 후진 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의 해외 나들이는 미국과의 실리 외교와 석유산유국의 순방에 초점을 둔 것 같다. 중국 주석이 미국 방문 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그를 초대한 것은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의 시장을 겨냥하여 손을 잡는 것이 아닌가. 또한 중국도 초속화 정보화 기술(IT)산업에 도약하고 있다. 잠재력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주석과 미국 대통령 부시의 정상회담은 경쟁과 동반자라는 실리 외교의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그러나 동서양이 부딪치는 불협화음의 심기 불편한 만남이었다.

후진 타오 주석은 신중하고 깊이가 있어 보이고 부시 대통령은 자유분방하고 다소 말과 몸짓이 과장 되어 보였다. 주석은 미국 방문을 마친 후 즉시 사우디 아라비아로 달려갔다.4월 22일부터 3일간 체류하면서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사우디 원유를 파키스탄 경유 중국으로 운송하는 송유관 시설에 관한 에너지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기름이 고갈되면 수혈을 받지 못한 환자처럼 중국의 산업은 빈사상태에 빠질 것이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세계 곳곳의 산유국을 찾아 유전개발과 원유공급 확보 작업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시된다면 중동의 뜨거운 사막에서 중국 대륙으로 관통하는 송유관은 기름을 운반하는 동맥이 될 것이다. 중국으로 이어지는 새롭게 포장한 근대의 실크 로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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