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장애자 주간을 맞아

2006-04-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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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사람들은 보통 장애자를 볼 때 측은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일반인의 편견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웃음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언제나 날카롭고 똑똑하고 많은 지식을 이용한다. 허지만 그럴수록 장애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은 얼굴에 올려놓지 못한다.

인류사회가 현대에 오면 올수록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끝에 얻은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목적은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을 장애인들은 이미 하늘에서 받은 거나 다름이 없다. 그것이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재산일 것이다. 장
애인들 중에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재주를 가진 이들이 많음을 발견한다. 그들에게서 천재적인 재능을 우리는 발견할 수가 있다. 새로운 우주를 발견한 영국의 한천문학자는 장애인 중에서 1급 장애자였고, 암기를 제일 잘 하는 콜로라도 거주민도 장애자다.


이외에도 인류사회에 공헌하고 일반인에 이득이 될 만한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해서 제공한 장애자가 사실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로 훌륭한 작품생활을 하는 예술가도 여럿 있다. 물론, 장애를 극복하고 노력했다 해서 훌륭한 발견가나 발명가, 혹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
는다. 타고난 재능과 그 1%의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장애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있다. 장애자는 경제적인 면에서 일반인보다 열악할 수밖에 없다.

복지단체나 정부 차원에서 장애자들에 대한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만 그것으로 장애인들이 생활을 돌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독지가들은 장애인을 고용해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일반인과 같이 자활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어느 독지가는 장애인을 위해
자기가 거둬들이는 이익의 일부를 남모르게 희사해서 그들의 경제생활을 돕는다. 뉴욕 한인사회에도 가끔 불의의 사고로 장애자가 된다든가, 또는 한국에서 이민올 때 데리고 온 장애자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으로 장애인의 활동을 일반인과 다 똑같이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장애인을 미국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한인사회에도 여러 단체와 조직이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단체는 극소수다. 한인사회의 많은 단체나 조직은 친목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단체일 뿐, 그늘진 구석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장애인을 위한 단체나 조직은 많이 모자란다. 육신의 불구만이 불구인가. 돕지 않는 자, 이기주
의자, 외면하는 자, 이런 사람들도 사실은 육신의 장애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도 있다.

바다에서 배가 파손돼 혼자 섬에서 생활하던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이유는 혼자서 살고 있는 그 섬 자체가 아니라 이웃이 필요해서다. 우리가 외진곳에서 살지 못하고 도시속으로 나오는 것은 도시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섞이지 않으면 살 수가 없
기 때문이다. 장애자도 일반인과 똑같은 사람이다. 육신이 잘못됐다고 무능한 것이 아니라 장애자이지만 능력은 다 갖추고 있다.

다만 장애자들도 로빈손 크루소처럼 장애자라고 하는 그 자체에서 비관하거나 탈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사는 그 속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살고 싶기 때문에 장애라고 하는 굴레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장애자를 돕는다고 할 것 같으면 도울 길은 단순하다. 그들의 능력, 사고, 마음 같은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절실하다. 사회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들여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자립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수퍼마켓 같은 데서 보면 장애자들이 눈에 간혹 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예를 들면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진열하는 일, 캐쉬대에서 돈 내고 나오면 물건 백에 집어넣는 일, 밖에서 카트 정리하는 일, 청소하는 일 등이다. 어느 독지가들은 장애인 수용단체에 연락해 장애인들을
일부러 고용해서 그들을 도와 그들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바로 설 수 있게 하여 ‘장애’라고 하는 이름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장애자들이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도 당당한 사회의 한 일원이다” 장애자 주간, 우리들의 귀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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