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봄 단상(斷想)

2006-04-2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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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바람이 분다. 한국엔 황사바람이 불고 사람들의 마음속엔 욕심의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분다. 욕심만 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 욕심이 있음으로 사람은 살아가는 원력이 있지나 않은지. 죽은 사람은 묘비에 이름만 밝힐 뿐 아무 욕심도, 또 아무런 시기도, 희망도 없이 누워 있지 않은가.

부활절이 지나고 새 봄은 만물을 새롭게 피어나게 한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 이미 피어버린 꽃망울들. 봄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준다. 뿌리로부터 빨아들이는 물들의 숨결. 그 숨결들이 나무를 지탱하고 또 나무 잎들을 피어나게 하고 꽃들을 화사하게 세상에 내 놓는다. 그들 속에 숨어 있는 신비함이여.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결혼한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자식은 또 다른 자신의 부활임을 왜 사람들은 모르는가. 사람이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것도 부활이지만 자식들이 자신의 부활임을 아는 것도 이 봄에 주는 축복일 것. 아버지와 어머니는 죽어도 자식들은 살아 또 자식을 낳고 또 자식을 낳으며 부활은 계속된다.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무엇이 나올까. 조상이다. 조상이란 아무도 보지 않은 선조들이다. 선조들, 조상이 있음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아는 것.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또 계속해 이어질 대의 연속이 부활임을. 그것은 전통이고 또 문화다. 옛것이 있음으로 새 것이 있고 새 것은 또 다시 옛 것이 됨을 왜 모르는가. 수십억 년이 단 초에 얽혀, 분초가 수십억 년에 함께 있어 세월은 가고 또 세월은 온다. 우주가 가지고 있는 그 경이로움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돈만 밝히고 천년만년 살아갈 듯 욕심의 바람을 멈추지 못한다. 흙속에서 태어나 흙속으로 돌아가는 생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고 상생해야 함에도 서로를 죽이지 못해 한다.

피 속에 흐르고 있는 숨결들이 맥박을 타고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살아 있음의 축복이여. 생의 환희여.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살아있음의 축복을 그 무엇으로 견줄 수 있을까. 2억만 분의 1로 태어나는 그 신비함을 모르고 사람들은 로토만 맞기를
바라는 바람은 언제나 멈출 수 있을까.
일상을 사는 사람들. 평범 안에 진리가 있음을. 튀어봐야 하늘 아래인 것을. 늘 그렇듯이 살아가는 지혜로움이 지식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적게 먹어도 그 안에 행복이 가까이 있음을 안다는 것. 오늘도 해는 뜨고 지고, 또 달은 뜨고 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 오늘이 있고 또 내일이 다가옴을.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만큼 행복함은 없으리.

22년 전 한 아기로 태어난 둘째 딸 아이. 5월이면 대학을 졸업한다. 대견스럽다. 베이사이드고등학교 4년을 아침마다 데려다 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대학을 졸업한다니. 이제 두 딸들도 독립할 때가 되었나보다. 큰 나무에서 작은 가지를 치고 또 다른 땅에 뿌리를 내릴 때가 가까웠나보다. 생의 또 다른 부활이다. 축복이다.
자라는 뿌리들은 계속 자라고 오래 된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갈 날을 점쳐 본다. 바람이 불 듯 바람처럼 갈 날을 오래 된 나무들은 알아야 함이.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고 또 가고 옴이 세상이 지닌 그냥 그대로의 진실임을. 허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하늘의 마음임을.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 잎들의 순수, 청순함에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점쳐 본다. 사랑해야 함이 우리들의 최상임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의 소중함.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 서로 아껴주고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사랑을. 새 봄에 피어나는 꽃잎처럼 상생의 길을 가는 것만이 사랑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함이 진정한 사랑이다.

바람이 분다. 한국엔 황사바람이 불고 사람들의 마음 안엔 욕구의 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고. 80, 90에 가야하는 생. 살아있음이 생의 가장 큰 축복인 것을. 가도 남는 것은 자식의 부활. 자식들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이 부활일까. 자신의 매일 매일의 삶이 부활인 것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아껴주는 서로의 삶. 상생의 삶이 부활인 것을. 너와 내가 없는 하나의 생과 삶이 부활인 것을. 하늘은 구름을 안고, 구름은 하늘 안에서 서로를 포옹한다. 구름처럼 가는 삶. 새 봄에 피어나는 파릇파릇 새싹들. 꽃. 나비. 아지랑이. 그들 속에 숨어 있는 새 봄의 신비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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