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로우십니까?

2006-04-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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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식(치과의사)
뉴욕, 뉴저지 일원에도 우울증 환자가 꽤나 많은 모양이다. 신문에 자주 회자되는 걸 보면.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다. 그래서 어떤 사회 속에 끼일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불안하고 외로움을 느낀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파문이나 유대교의 Community에서의 추방 같은 것이 가장
큰 벌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인간의 약점이 이용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해서 쉽게는 교회로, 친목회로, 동창회로 모여든다. 하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지 않던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어느 곳에 있어도 외로울
수밖에 없다. 술이나 마약으로 잠시동안은 잊을 수 있지만 폐인이 된다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그 일들이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외로움의 해결은 자신 스스로가 해결해야할 자신만의 문제이다. 내가 오래도록 좋아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없는 나 자신만의 취미를 찾아보자. 남이 도와주어 해결되는 피동형보다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능동형이 보다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다.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외부의 도움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은 자주 값이 치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유대인 속담에 ‘잡은 고기를 주기 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 한 것도 이런 능동적 해결을 의미한다 하겠다.
진작에 두 아이가 학교와 직장을 따라 멀리 살고 보니 아내와 나, 둘이서 신혼 아닌 신혼생활을 한다. 매주 나가던 교회마저도 몇년째 안 나가고 있고 사람 만나는 일은 고작 환자를 대하는게 전부인데 그나마도 요즈음엔 주 2회로 진료회수도 줄였으니 사람 만나는 것으로 따지면
전보다 상당히 줄어든 셈인데도 생활은 여전히 바쁘다.
남새밭도 가꾸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글도 쓰고, 아내가 으뜸으로 꼽아주는 핸디맨 노릇, 이런 것을 하며 논다(?).

치과의사인 본업을 제외하면 모두 아주 초보적 아마추어 수준이다. 그런데도 농사일 겁내는 사람을 만나면 필요성 역설이 사명감 수준이다. 나는 이 농사일의 소개 내지 권유를 전도(傳道)라고 부른다.
전도란 길을 전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무슨 길인가? 하나님이 창조하고 선물로 준 이 지구를 내가 잘 사용하며 살아갈 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좋은 지구환경으로 물려줄 수 있는 일을 하여 이런 것에서 쾌락이 아닌 긍정적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길(道)을 의미한다.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이나 명예를 위해 노력하는 인간들의 모든 수고의 목적지는 행복의 추구가 아닐까? 마치 행복이라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처럼 추구하는 길과 방법은 달라도 목적하는 정상은 ‘행복하기 위하여’이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하나일 수 없다. 그렇기에 ‘이 길만이’라고 고집해 말하지 않는다. 단지
수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인 것을... 하지만 어찌보면 너무도 삶이 힘들고 희망이 없어보이는 가
난한 사람들에게도 이 자연과의 접촉은 미래형이 아닌 현재진행형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
는 점에서 ‘하나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 번쩍번쩍하는 고급차로 창밖을 내다보며 달리는 아스팔트 같은 대로가 아니다. 이 길은
허겁지겁 바쁘게 달리는 사람들에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오솔길이다. 오솔길은 여유를 갖고
걸어야 제 멋이 난다. 그래야 새 소리도 들을 수 있고 흐르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
의 섭리도 볼 수 있게 된다.
땀 흘려 돌을 추려내며 옥토를 만들어 씨를 뿌려놓으면 한 알의 씨앗이 썩어져 몇 십 몇백 천배의 수확을 주는 희생의 경이로움이다.
어리다 못해 여린 새 순이 자기 몇 십배의 무게를 떠받치고 올라오는 힘찬 박동을 들으며 꺼질듯 지쳐진 영혼을 충전할 새 힘을 얻는 곳도 내겐 이 gardening 터전에서다.

우리가 자연의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를 둘러싼 자연이라는 많은 친구를 얻게되는 것이다. 지구가 해마다 다르게 곪아가고 있다. 물이 오염되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하고 기후가 예측을
빗나가 가히 재앙이라 할 정도로 진저리를 친다. 중미 코스타리카의 Giffiro라는 곳에 미국 바나나 회사 농장이 있었는데 얼마나 화학약을 썼는지 ‘다시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판정을 받았다. 이런 땅들이 자꾸 늘고 있다.
방 한 구석에서 외로움과 우울증 앓이를 하기에는 시대적 요청과 할 일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오늘 내게 맡겨진 작은 남새밭만이라도 건강하도록, 건강하기 위하여, 건강하게 지켜야 하겠다.이제 밖으로 나가 푸른하늘을 보자. 그리고 추운 겨울을 이기고 올라온 수선화 푸른 싹의 함성
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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