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람꽃

2006-04-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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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강물이 흐른다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들과 바람은 흔적 없이 간다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들은 그 영혼이 맑다. 보이지 않는 형상을 알고, 있는 형상을 그대로 믿고 살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를 모르고 요즘 세상에는 자신과 남의 인생을 비틀면서 사는 사람이 많다..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계’를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돈 뗄 염려부터 하니 ‘계’가 끝날 때까지 납덩이같은 의심을 한 보따리 들고 다닌다. 동물들은 옆에 동물이 다가오면 의심부터 품고 경계를 하는데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은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나는 믿음 하나 때문에 우리를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 그에 대한 정의는 천태만상으로 많고 또 많다.

언어학자는 인간이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에 동물과 다르고 음악가는 노래를 할 줄 알기에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한다.
철학자는 생각할 줄 알기 때문에, 종교가는 신을 알기 때문에, 장사꾼은 돈을 알기에, 술꾼은 술 마시고 취할 줄 알기에, 연인은 사랑을 알기에, 과학자는 이론을 알기에, 미술가는 그림을 알기에, 자동차 업자는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기에, 여행업자는 여행을 할 줄 알기에, 군인은 전쟁을 할 줄 알기에, 정치가는 통치할 줄 알기에, 법관은 법을 알기에, 시어머니는 잔소리를 할 줄 알기에, 사기꾼은 속일 줄 알기에... 등등 아전인수격으로 정의를 한다.


내용은 다 그럴듯 하지만 다 틀린 답이다. 명답은 “인간은 인간 그 자체를 믿을 줄 알기 때문에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 맞는 말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믿음이 있는 것이다. 믿는 데에서 사람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로 세워지는 것이다. 믿음은 인간생활의 기본이다. 믿음 없이 인간이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생각도, 마음가짐도, 행동도 예의도,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평행을 이루며 항상 좋게 지속되지 않는다. 인간답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기본은 곧 믿음인 것이다. 믿음의 연습이 안된 사람은 연습이 안된 분량 만큼 성숙되지 못한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믿음으로 시작된 나라다. 하늘을 믿었고, 이 땅을 믿었고, 황량한 주위환경이라도 미래를 믿었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행복을 믿었다. 청교도들이 그러했고 이 땅을 찾아온 초기 이민들이 그러했다. 60년대의 한국으로부터 온 이민도 그러했다. 믿음에 뿌리를 두고 사회를 성숙시켜서인지 아직도 미국은 믿음의 나라다. 그런데 한국인이 많아지면서 동족으로서의 믿음보다는 동족끼리 헐뜯고 형제가 형제를, 친구가 친구를 시기하고 많은 단체 회원들이 험담 섞인 의심을 품고 뒤에서 싸우기에 아까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재미일까? 아니면 습관일까? 어디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 진원지를 찾아보면 예전에도 그랬던 사람이고, 그 때도 싸우던 사람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한다는 속담이 있다. 성실한 한인사회를 망신시키면서 이익을 손해로 바꾸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큰 이익을 챙기던 가발장사가 그래서 망했고, 신발 장사가 그 뒤를 이어 망했고, 옷장사가 그래서 허덕였다. 뭐가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요사이 맨하탄의 델리 장사가 허덕이고, 식당이 허덕인다. 네일가게가 허덕이고 흔하지도 않은 꽃가게 마저도 시드는 꽃을 바라보며 문을 닫을 준비를 한다. 되는 것이 없다.사람이 사람을, 친구가 친구를, 동업자가 동업자를 믿지 않는 세상에 되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너도 살고 나도 살면서 서로 서로 믿어야 한다. 믿으면 말이 트이고, 트이는 말에 살 길이 생긴다. 믿자! 그리고 또 믿자!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마음을 내놓고 꽃을 피우는 바람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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